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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향기를 찾아서

▣조선이 기록한 정체 불명의 누르가치 아들▣

by 晛溪亭 斗井軒 陽溪 2022. 2. 27.

조선이 기록한 정체 불명의 누르가치 아들▣

https://m.blog.naver.com/demon_illu/222064187804

[바다루 : 2020. 8. 18. 21:08]

blog.naver.com/demon_illu/222064187804       요동의 풍운

작년에 저는 병자호란과 관련하여 선약해(宣若海)와 선세강(宣世綱)이 혼동된 문제에 대해 입론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이 글을 작성하고 뒤늦게 입수한 자료가 바로 선약해가 지은 『심양사행일기(瀋陽使行日記)』였는데요. 이것은 다름아닌 선약해가 1630년에 심양에 사신단의 일원으로 다녀오면서 적은 일기입니다. 제가 쓴 글이 부끄럽게도, 이 책을 역주한 신해진 선생께서는 선약해와 선세강의 혼동 문제를 진작에 간파하고 이미 적어두셨더군요.

 

제가 주목하는 것은 신해진 선생께서 번역하신 또 다른 책인 위정철(魏廷喆)의 『심양왕환일기(瀋陽往還日記)』 입니다. 선약해가 심양을 다녀온 이듬해 1631년 3월 20일부터 4월 30일까지의 사행기인 이 책에는 부록으로 당시 청나라 왕족들의 대략적인 족보가 실려 있는데, 청나라의 공식 기록과 대조해보면 여러모로 흥미로운 부분이 많습니다. 2개의 이본이 조금씩 글자가 다른데, 여기서는 신해진 선생의 번역을 참조하여 함께 소개해드립니다.

 

전한(前汗)의 이름은 노아합적(老兒哈赤)이고 성은 둥(佟)이다.

前汗名老兒哈赤姓佟

홍태시(弘泰始)가 이어서 즉위하고 이에 청(淸)이라 하였다.

弘泰始繼立是爲淸

세조(世祖)가 순치(順治)로 개원하고 성을 위(魏)로 고쳤다.

世祖改元順治改姓魏

 

한의 아들 귀영개, 귀영개의 아들 요토ㆍ소토ㆍ사아라ㆍ왕대ㆍ발음아ㆍ마처

汗子 貴永介, 介子 要土ㆍ小土ㆍ沙阿羅ㆍ王大ㆍ勃音阿ㆍ麻處

이자 망개토, 아들 매은월을리ㆍ사사내

二子 忘介土, 土子 每隱月乙里ㆍ沙沙乃

삼자 홍태시, 아들 호립【호지】

三子 弘泰始, 始子 好立【好之】

사자 평고, 아들 없음

四子 平古, 無子

팔자 아지아귀, 아들 아지

八子 阿之阿貴, 貴子 阿之

구자 도지호

九子 道之好

십자 도두【조두】

十子 刀斗【刁斗】

 

첩의 아들 압다     딸의 남편 두랑개

妾子 壓多        女壻 豆郞介

이자 소음다

二子 所音多

삼자 탕고태

三子 湯古太

사자 소음아

四子 所音阿

오자 남다

五子 南多

 

여기서 누르가치의 아들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이름만으로 대입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심양왕환일기 표기 대응되는 이름 각 인물의 생모

정실 장남 귀영개(貴永介) 2남 다이샨(Daišan) 적복진 동가씨

정실 차남 망개토(忘介土) 5남 망궐타이(Manggūltai) 계복진 부찰씨

정실 삼남 홍태시(弘泰始) 8남 홍타이지(Hong Taiji) 측복진 엽혁나랍씨 (효자고황후)

정실 사남 평고(平古) 16남 피양구(Fiyanggū) ?

정실 팔남 아지아귀(阿之阿貴) 12남 아지거(Ajige) 대복진 오랍나랍씨 (효열무황후)

정실 구남 도지호(道之好) 14남 도르곤(Dorgon) 대복진 오랍나랍씨 (효열무황후)

정실 십남 도두(刀斗) 15남 도도(Dodo) 대복진 오랍나랍씨 (효열무황후)

첩실 장남 압다(壓多) 7남 아바타이(Abatai) 측복진 이이근각라씨

첩실 차남 소음다(所音多) ? ?

첩실 삼남 탕고태(湯古太) 4남 탕구다이(Tanggūdai) 서복진 뉴호록씨

첩실 사남 소음아(所音阿) ? ?

첩실 오남 남다(南多) ? ?

 

그런데 따지고 보면 『심양왕환일기』의 이 족보는 상당히 뒤죽박죽입니다. 나이로 따지면 누르하치의 막내아들인데다 생모가 누구인지도 알 수 없는 피양구가 갑자기 정실 4남으로 등장하고, 탕구다이보다 4살이 적은 아바타이가 오히려 형을 제치고 첩실 가운데 맏이로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이 순서가 물리적인 나이 대신 청나라 황실의 모계 서열을 반영한 것이라고 본다면 이해는 한결 쉬워집니다.

 

누르가치가 사망한 뒤 그의 부인으로 가장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은 이미 사망한 지 오래였던 적복진 동가씨(1560~1592)였습니다. 동가씨는 추옝과 다이샨 두 아들을 두었는데, 익히 알려진 것처럼 추옝이 누르가치에게 덤비다가 죽임당하면서 다이샨이 사실상의 장남 역할을 하게 됩니다. 『심양왕환일기』를 비롯한 조선의 기록에서 다이샨의 칭호인 "구옝 바투루"에서 유래한 귀영개ㆍ귀영가가 누르가치의 장남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 다음으로 높은 지위를 차지하는 사람은 동가씨 사후에 후처로 들어온 계복진 부찰씨(~1620)입니다. 부찰씨는 누르가치의 5남 망궐타이와 10남 더거러이를 낳았지만, 여기서 더거러이는 황실 내부의 권력 투쟁에 휘말리면서 봉호가 추탈되었다고 하니 『심양왕환일기』에 언급되지 않는 것도 아마도 이것과 관련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누르가치의 3남과 4남은 생모의 지위가 낮았기에 다이샨 다음 가는 인물은 언제나 망궐타이였고, 이는 다양한 기록을 통해 확인됩니다.

 

그 다음으로 높은 지위를 차지하는 사람은 부찰씨가 사망한 뒤 누르가치의 마지막 정실 부인이었던 대복진 오랍나랍씨…가 되어야 했지만, 누르가치 사후 홍타이지가 즉위하면서 이 순서는 크게 교란이 일어납니다. 엄밀히 따지면 첩실 소생이었던 홍타이지는 자신의 어머니를 효자고황후로 추숭함으로써 정실의 반열에 밀어넣었고, 결국 효자고황후 엽혁나랍씨는 생전에는 측복진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죽은 뒤에는 오히려 대복진 오랍나랍씨보다 높은 지위를 차지하게 됩니다.

 

홍타이지가 즉위하면서 목숨을 잃고 누르가치의 무덤에 순장된 오랍나랍씨, '아바하이'라는 이름으로도 잘 알려진 그녀는 누르가치 말년의 총애를 독차지하며 아지거ㆍ도르곤ㆍ도도의 세 아들을 두었고, 이것은 『심양왕환일기』에서도 세 사람이 홍타이지보다 다음에 나오긴 하지만 정실로써 나란히 등장하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즉 누르가치의 정실 자식만 본다면, 다이샨ㆍ망궐타이ㆍ홍타이지ㆍ아지거ㆍ도르곤ㆍ도도의 순서는 더거러이가 빠진 것 이외에 틀린 게 아니라는 것이죠.

 

문제는 여기서 홍타이지와 아지거 사이에 뜬금없이 등장하는 평고(平古)입니다. 이름만 놓고 따진다면 '평고'에 가장 근접한 사람은 당연히 누르하치의 막내아들인 '피양구'가 되어야 할 테지만, 이런 서열을 감안하고 바라보면 이 쉽고 간단한 답변은 선뜻 따르기 꺼려지게 됩니다. 하지만 누르가치의 10남이자 정실 소생이기도 한 더거러이는 '평고'의 자리에 정확히 부합하는 인물이 됩니다. 과연 '평고'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그는 도대체 왜 '평고'라는 이름으로 적혔을까요?

 

첩실의 서열로 넘어가더라도 문제는 첩첩산중입니다. 같은 첩실 소생이라도 측복진과 서복진의 서열이 나뉘기에 아바타이를 시작으로 측복진 소생을 먼저 열거하고 탕구다이를 시작으로 서복진 소생을 이어 열거했다고 하면 이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될 수 있을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보더라도 우리는 아바타이 다음으로 등장하는 '소음다', 탕구다이 다음으로 등장하는 '소음아'와 '남다'의 정체를 새롭게 찾아내야 하는 또 다른 벽에 부딪치게 됩니다.

 

사실 더거러이를 정실 소생으로 보고 어떻게든 제외하더라도 이 자리에 넣을 수 있는 후보는 많습니다. 누르가치의 3남 아바이(서복진 조가씨 소생), 6남 타바이(서복진 뉴호록씨 소생), 9남 바부타이(서복진 가목호각라씨 소생), 11남 바부하이(서복진 가목호각라씨 소생), 13남 라이무부(서복진 서림각라씨 소생)와 마지막으로 '평고'일 수 있는 16남 피양구가 아직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소음다'ㆍ'소음아'ㆍ'남다'가 누구인지 확인하는 일은 요원하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다만 위에서 제기한 서열 가설을 충실히 따른다면, 아바타이보다 낮되 탕구다이보다는 높은 '소음다'는 서복진 소생의 3남 아바이를 가리킬 가능성이 있습니다. 물론 아바이라는 말이 도대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소음다'가 되는지 저로서는 알 도리가 없으므로 이것은 어디까지나 가설에 지나지 않을 뿐입니다. 단지 어느 후대에라도 이 미스터리가 풀릴 수 있길 바랍니다.

 

前汗名老兒哈赤(놀하치)姓佟(둥)

弘泰始繼立是爲淸

世祖改元順治改姓魏

 

汗子 貴永介, 介子 要土ㆍ小土ㆍ沙阿羅ㆍ王大ㆍ勃音阿ㆍ麻處

二子 忘介土, 土子 每隱月乙里ㆍ沙沙乃

三子 弘泰始, 始子 好立【好之】

四子 平古, 無子

八子 阿之阿貴, 貴子 阿之

九子 道之好

十子 刀斗【刁斗】

 

妾子 壓多        女壻 豆郞介

二子 所音多       五百類流 (每一類三百名式 通計共十五萬)

三子 湯古太

四子 所音阿

五子 南多

​汗 固山中軍 能傑 黃旗

汗子 好丘​

汗弟 壓多

汗​弟 所音多           固山中軍 多乙下夫 黃質紅邊旗

​貴永介

三子 沙下羅

四子 王大

五子 勃音阿

六子 麻處            固山中軍 會伊大 紅旗​

 

永介 長子 要土

​永介 兄子 豆頭

豆頭弟 利可 固山中軍 所乙音麻貴 紅心白邊

亡可土

平古

​​亡可土子 每隱月

子 沙沙麻【沙沙乃】 固山中軍 汝恥 藍旗

​汗四寸弟 之乙可

自狀介 固山中軍 平古 藍心紅邊旗

​汗弟 阿之阿貴

汗弟 道之好【道道好】 固山中軍 一斗 白心紅邊

汗末弟 刀斗【道斗】固山中軍 可叱道里 白旗

​汗妹夫 豆郞介 蒙古 固山中軍 牛郞介 朴氏 孫乃 黃心黑邊

汗姪女夫 漢人 董揚詳【董揚鮮】固山中軍 石國柱 石天柱 白心紅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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