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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참봉공파종중▣

● 조원기(趙元紀):세조3년(1457)∼중종28년(1533)

by 晛溪亭 斗井軒 陽溪 2021. 1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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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기선조님 신도비:묘소10m좌표에 이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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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원기(趙元紀):세조3년(1457)∼중종28년(1533)

 

할아버지는 조육(趙育)이고 아버지는 성균관 사예(司藝) 조충손(趙衷孫)이며 어머니는 남상명(南尙明)의 딸이다. 본관은 한양(漢陽)이고 자(字)는 이지(理之)이며 호는 돈후재(敦厚齋)인데 조선 개국공신 조온(趙溫)의 증손이다.

 

장기를 두는 등 놀이에만 열심이었는데 9세 때 아버지가 가만히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우리아이는 무익한 일을 배웠으니 장차 어떻게 도(道)를 이루며 덕(德)을 세울까?” 하였다. 이 말을 듣고 반성한 뒤 학문에 정진하여 성종14년(1483) 생원․진사시에 합격하고 연산군2년(1496)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전적․정언․수찬 등을 역임하였다.

 

사관(史官)으로 재직 중 임금이 생존시에는 아무도 열람할 수 없게 되어 있는 사초(史草)를 연산군이 보고자 제출을 명하였으나 이에 불응하여 파직되었고 연산군6년(1500) 복직되어 해랑도 초무사의 종사관으로 참여하여 도망간 백성들을 찾아온 공으로 3등급을 건너뛰어 승진하여 병조정랑 겸 봉상시 첨정(僉正)이 되었다.

 

그러나 1504년 연산군이 밤까지 사냥한 일 등을 아뢰었다는 이유로 횡성으로 유배되었다가 중종반정(1506년) 후 풀려나와 성균관 사성(司成)․선공감 정이 되었다.

 

그 후 목민(牧民)하는 데 자상하고 무관(武官)의 일도 잘 아는 까닭에 경원부사로 나갔는데 중종7년(1512) 특진관이 “경원부사가 부임시 저축된 곡식이 거의 없었는데 지금은 저축이 조금 넉넉해졌다.”고 보고하여 그 공으로 대사간에 승진되었고 다음해 좌부승지가 되었으며 1515년 청백리에 선정되고 이어 지중추부사에 임명되었다.

 

중종10년(1515) 명나라에 성절사로 다녀왔으며 그 이듬해 대사헌․이조참판․동지중추부사․한성부 우윤 등을 역임하고 1517년 전라도관찰사를 지내고 1518년 형조판서를 거쳐 좌참찬을 지냈다. 1519년 대사헌에 임명되자 10회나 사직상소를 올렸지만 들어주지 않고 동지중추부사로 자리를 옮겼다.

 

그해에 개성유수로 나갔으며 1521년 동지중추부사가 되었고 1523년 명나라 황태후 상(喪)을 당하여 진위사(陳慰使)로 명나라에 다녀왔고 1526년 나이 70이므로 사직하려 하였으나 허락되지 않았다.

 

중종23년(1528) 공조판서가 되었고 다음해 우참찬․좌참찬을 지냈으며 중종27년(1532) 임금이 “젊은 시절부터 노령에 이르기까지 여러 사람으로부터 믿고 복종하는 자가 있거든 서슴없이 알리라.”고 하니 신하들이 조원기를 추천하니 임금은 칭찬하고 청백리로 선정하고 숭정대부로 올려주고 판의금부사에 임명하였다.

 

그해에 다시 형조판서가 되었고 이듬해 나이가 77세라며 사직을 원했지만 허락되지 않았고 지중추부사로 있다가 좌참찬이 되었는데 조정에 나오다 쓰러져 당일 사망하였다.

 

성품이 추위를 잘 견디어 비록 한겨울이라도 저고리 하나와 겹옷 하나를 입을 뿐이었다. 벼슬에 있을 때 녹봉을 받으면 반드시 자매를 도와주고 친척 중에 불쌍한 이에게 미치고 자기 생활은 심히 박하게 하면서도 태연하였다. 조광조의 숙부로 조카의 명성이 지나치게 높아지자 그는 경원부사로 근무하면서 심히 근심하며 편지를 보내어 경계하였다. 저서로는 『조문절공유고趙文節公遺稿』가 있으며 시호는 문절(文節)이다.

 

조원기는 정희량과 아주 가까운 사이였는데 정희량이 벼슬을 하고 자기는 과거시험에 합격하지 못해 어렵게 살 때 그로부터 “자네 같은 사람은 사십년을 어렵게 살다가 이후 사십년은 영달할게고 수명도 그리 길걸세.” 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얼마 후 한강을 건너다 배가 뒤집혀 물속에 빠졌는데 눈을 감고 강 언덕 까지 기어갔는데 육지에 나온 것도 몰랐다. 행인들이 이상하게 여겨 “땅에서 기어가는 저자는 웬 놈이야?” 하는 말을 듣고 그제야 눈을 떠보니 모래밭에 닿아 있었다. 정희량의 말대로 40세에 과거시험에 합격하고 벼슬은 1품인 찬성에 오르고 수명도 80이 다 되도록 살았다. <인물고>

■중종실록 75권, 중종 28년 8월 7일 丁丑 1번째기사 1533년 명 가정(嘉靖) 12년

판부사 조원기를 치료케 하다

[국역 원문 . 원본 보기]

정원이 금부 당상의 뜻으로 아뢰기를,

"판부사 조원기가 오늘 출사(出仕)하는 길에 금부 문밖에 도착하여 말에서 내릴 때 중풍(中風)에 걸려 인사불성이 되었으므로 의원을 시켜 치료중입니다."

하니, 전교하였다.

"내의원(內醫院) 관원을 시켜 약을 가지고 가서 치료하게 하라."

【태백산사고본】 38책 75권 50장 B면【국편영인본】 17책 458면

【분류】왕실-사급(賜給)

○丁丑/政院以禁府堂上意啓曰: "判府事趙元紀, 今日仕進, 到府門外, 下馬時中風, 不省人事。 已令醫員, 時方救療。" 傳曰: "令內醫院官員, 持藥往救。"

【태백산사고본】 38책 75권 50장 B면【국편영인본】 17책 458면

【분류】왕실-사급(賜給)

 

 

■중종실록 75권, 중종 28년 8월 7일 丁丑 2번째기사 1533년 명 가정(嘉靖) 12년

의정부 좌참판 조원기에게 시호를 내리다

국역 원문 . 원본 보기

의정부 좌참찬 조원기가 졸(卒)하니, 문절(文節)이란 시호를 내렸다. 【원기(元紀)의 부고(訃告)가 왔으나, 상은 바야흐로 사직제(社稷祭)를 위하여 재계중이었으므로 입고(入告)하지 않았다.】

사신은 논한다. 조원기는 평생 동안 사소한 물건 하나도 남에게서 받지 않았다. 그러므로 벼슬이 숭품(崇品)에까지 이르렀으나, 집안이 가난하여 이부자리 하나 변변한 것이 없고 방이라곤 겨우 비바람을 막을 뿐이었는데도 조금도 근심하는 빛이 없었으니, 이는 천성이 고결해서이다. 흥조(興祖)와 헌조(憲祖)란 서자 둘을 두었는데, 우애가 지극히 독실하여 원기가 죽은 뒤에는 한집에 살면서 내것 네것을 따지지 않고 의식을 함께 하니, 시의(時議)가 훌륭히 여겼다.

【태백산사고본】 38책 75권 50장 B면【국편영인본】 17책 458면

【분류】인물(人物) / 역사-편사(編史)

○議政府左參贊趙元紀卒。 賜謚文節。 【元紀訃聞至, 以社稷齋戒, 不入啓。】

【史臣曰: "趙元紀, 自少至老, 一介不取於人, 位至崇品, 門庭冷落, 而寒無坐席。 居室僅蔽風雨, 略無憂慮, 天性然也。 有庶子二人, 曰興祖、憲祖, 友愛篤至。 自元紀卒後, 同居一室, 不畜私儲, 衣食必共之, 時議美之。"】

【태백산사고본】 38책 75권 50장 B면【국편영인본】 17책 458면

【분류】인물(人物) / 역사-편사(編史)

 

 

■중종실록 75권, 중종 28년 8월 7일 丁丑 3번째기사 1533년 명 가정(嘉靖) 12년

혜성이 약간 보이다

국역 원문 . 원본 보기

밤. 짙은 구름이 끼고 혜성이 약간 보였다.

【태백산사고본】 38책 75권 50장 B면【국편영인본】 17책 458면

【분류】과학-천기(天氣)

○夜, 密雲, 彗星微見。

【태백산사고본】 38책 75권 50장 B면【국편영인본】 17책 458면

【분류】과학-천기(天氣)

 

 

■중종실록 75권, 중종 28년 8월 8일 戊寅 1번째기사 1533년 명 가정(嘉靖) 12년

좌참찬 조원기에게 부의를 명하다

국역 원문 . 원본 보기

정원에 전교하였다.

"좌참찬 조원기에게 예에 따라 특별히 부의(賻儀)할 것을 이미 명하였다. 그러나 이 사람은 청백리(淸白吏)이니, 백면포(白綿布) 1동(同), 관면포(官綿布) 1동, 정포(正布) 1동을 별도로 제급(題給)하고, 승전(承傳)의 문서에 청백리의 사연을 모두 기록하여 뒷사람을 격려하라."

【태백산사고본】 38책 75권 50장 B면【국편영인본】 17책 458면

【분류】왕실-사급(賜給)

○戊寅/傳于政院曰: "左參贊趙元紀, 別致賻, 則已依例給之, 然此淸白吏也。 白緜布一同、官綿布一同、正布一同, 別爲題給, 承傳內, 俱錄淸白吏辭緣, 以勵後人。"

【태백산사고본】 38책 75권 50장 B면【국편영인본】 17책 458면

【분류】왕실-사급(賜給)

 

■중종실록 75권, 중종 28년 8월 8일 戊寅 2번째기사 1533년 명 가정(嘉靖) 1533년 명 가정(嘉靖) 12년

큰 비가 내리다

국역

밤. 큰 비가 내렸다. 혜성이 보이지 않았다.

【태백산사고본】 38책 75권 50장 B면

【국편영인본】 17책 458면

【분류】 과학-천기(天氣)

원문○夜, 大雨, 彗星不見。

【태백산사고본】 38책 75권 50장 B면

【국편영인본】 17책 458면

【분류】 과학-천기(天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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