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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蓀谷集序◑
손곡시집(蓀谷詩集)
○ 本集은 蓀谷 李達(1539 : 中宗34 ~ 1610 : 光海君2)의 文集이다.
○ 本集은 弟子 許筠이 蒐集하고 李再榮이 編次하여 1618年頃에 活字로 刊行한 初刊本이다.
○ 分量은 6卷 1冊으로서 總 81板이다.
○ 本 影印底本은 國立中央圖書館藏本(圖書番號 : 일산古3644-54)으로서 半葉은 9行 15字이고 半郭의 크기는 23.3×16.4(㎝)이다.
○ 本 影印底本에는 序文이 缺落된 바, 同一本인 日本 內閣文庫藏本(圖書番號 : 17820毛2, 集136-1)을 촬영한 國立中央圖書館 所藏 마이크로필름(필름番號 : 古M3644-42)에서 발췌 보충하였다. 本集의 卷2 板次에서 첫번째 「3」은 「2」의 誤記이다.
○ 本集의 標點者는 宋首炅이고 監修者는 羅金柱이다.
한국문집총간 DB에서 사용된 부호는 다음과 같다.
。:문장 안에서 구(句)나 절(節)의 구분이 필요한 곳과 문장의 끝에 사용하였다.
묘도문이나 부(賦), 사(辭) 등에서 銘曰, 辭曰 등의 뒤에 사용하였다.
대구(對句), 연구(聯句) 등 운문의 각 구마다 원주로 저자를 표시한 경우, 각 구의 끝뿐 아니라 원주 뒤에도 사용하였다.
,:인명, 지명, 관직명, 서명 등이 나열되어 구분이 필요한 곳에 사용하였다.
[] : 저본에 없는 제목이나 본문 내용을 생성하였을 때 사용하였다.
글의 저자가 문집의 저자와 다른 경우, 제목 옆에 저자를 밝히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저본에서 작은 글씨로 구분된 按, 增 등의 글자를 명확하게 구분하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제목이나 원주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의 성격이 달라져 구분이 필요한 곳에 사용하였다.
▣ : 저본의 결자(缺字)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 어떤 글자인지 알아볼 수 없는 마멸자(磨滅字)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 저본의 묵등(墨等 검게 칠해진 부분)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밑줄:교감주, 난외주 등 원주를 제외한 주석의 대상이 되는 표제어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그림:도식에 가까운 그림은 하단에 ‘삽도’로 표시하고, 소자(小字)로 제목을 병기하였다.
회화에 가까운 그림은 하단에 ‘삽화’로 표시하고 소자로 제목을 병기하였다.
목차
蓀谷詩集序(許筠)
061_003
卷一
061_005
古風
061_005
斑竹怨
061_005
采菱曲
061_005
尋崔孤竹坡山莊
061_005
夜懷詠韻
061_005
降仙樓 次泥丸韻
061_005
淮陽府 簡寄楊蓬萊
061_005
夜來聞雨 留坐忘使君別
061_005
詠韓石峯五松亭
061_005
錄示李使君巨容二首
061_006
憶昔行 贈申正郞渫
061_006
卷二
061_007
歌
061_007
漫浪舞歌
061_007
柳摠戎紫騮馬歌
061_007
新知樂 贈申施甫德濬
061_008
百祥樓
061_008
關山月
061_008
三五七言
061_008
卷三
061_009
五言律
061_009
丘山驛
061_009
鏡湖 次崔內翰大中韻
061_009
贈鑑上人
061_009
經廢寺
061_009
次允上人軸
061_009
送崔時中之京
061_009
東閣尋梅
061_009
題孝里堂
061_009
贈性行上人
061_009
端川九日
061_010
建登山
061_010
寧越道中
061_010
次旌善郡板上韻
061_010
夜泊大灘
061_010
次盧相國韻 題甓寺僧軸
061_010
別李季獻之京
061_010
上思菴相公
061_010
肅州道中
061_010
渡浿江 題裁松亭二首
061_011
公山 逢宋廷玉
061_011
上體察相公
061_011
鎭南樓
061_011
詠金璽家牧丹
061_011
不夕
061_011
梁山道中
061_011
清明日感懷
061_011
謝山僧惠松葉
061_012
襄陽道中
061_012
夜坐 贈許端甫
061_012
夜坐有懷
061_012
寄黃晦之
061_012
三登草堂
061_012
書李有爲壁
061_012
定山東軒
061_012
別沈秀才大亨
061_012
詠柳家孤雁
061_013
別林子立得信
061_013
北臺登眺
061_013
次韻 寄閔進士
061_013
次權進士韻
061_013
旅遊
061_013
次韻
061_014
送北渚金學士遊妙香之行
061_014
端陽述懷
061_014
贈別丁學官
061_014
呈柳摠戎
061_014
次韻呈金沙
061_014
寄問江界趙府使
061_014
贈金通判
061_014
秋山夕懷
061_014
贈韓察訪
061_015
奉酬南窓
061_015
黃州 逢韓子善
061_015
奉送申令公之任江陵
061_015
次邀月堂韻
061_015
上楊明府
061_015
湖寺 見僧軸有崔白詩 愴懷有贈
061_015
與友人期宿湖寺
061_015
贈僧
061_015
茂長道中
061_016
贈友人
061_016
遊三清洞
061_016
贈性菴別
061_016
過扶餘有懷
061_016
弘農城外 別李佐郞子張
061_016
南州 示孤竹使君
061_016
病懷寧城倅孫使君
061_016
聚遠亭 示靈茂二使君
061_016
宿土亭浦樓
061_017
扶餘道中
061_017
次思菴韻
061_017
宿道泉寺明月寮
061_017
數月
061_017
贈僧普元西歸
061_017
靑鶴洞
061_017
佛日菴 贈因雲釋
061_017
雙溪寺
061_017
贈道義上人
061_018
到帶方府 示府伯
061_018
龍成酬唱
061_018
安州地 奉送具大諫還朝
061_018
踏靑日 示坐忘
061_018
錄示坐忘二首
061_018
卷四
061_019
七言四韻
061_019
題衍上人軸
061_019
贈行思
061_019
湖南客中
061_019
松京懷古
061_019
挽孫明府
061_019
題釜山浦
061_019
善山道中
061_019
曉行板橋村
061_020
送林子順覲嶺南左兵營
061_020
送客出西郊 簡寄楊根使君
061_020
暮春尋寺
061_020
寄問許典翰
061_020
渡清川江
061_020
上龜城林明府
061_020
書懷
061_021
上思菴相公
061_021
道中感懷
061_021
九日 送伯宗朝天
061_021
題清道李家壁
061_021
梨花亭 次駱峯韻
061_021
詠雪 奉呈虛舟
061_021
獨坐感春 呈虛舟
061_021
登清遠樓感懷
061_022
留別洪君瑞
061_022
奉別權員外書狀之行
061_022
贈別韓景洪濩
061_022
江東 逢金基祿話舊
061_022
江東 贈主倅洪子敬
061_022
登白華山
061_022
次鄭文孚令公韻
061_023
奉送李鵝溪宣慰之行
061_023
次長律韻
061_023
放赦後 寄荷谷
061_023
送李伯生賀至
061_023
題湖寺僧卷
061_023
上月汀亞相
061_023
九日黃岡
061_024
降仙樓夜懷
061_024
奉寄月汀大人
061_024
平壤感懷
061_024
立春吳體
061_024
客懷
061_024
謝勤上人
061_024
贈平壤少尹韓仲孚
061_025
寒食
061_025
寄安州牧使金德諴
061_025
過鳥嶺 聞杜鵑有感
061_025
白馬江懷古
061_025
無題
061_025
守歲新溪夜 分韻
061_025
病滯 題寧城池樹
061_026
夜行驪江感懷
061_026
戊辰 晴明出遊
061_026
逢黃廷式令公贈別
061_026
偶吟
061_026
次雙阜相公廣寒樓韻
061_026
龍城 次玉峯韻
061_026
次權進士韻
061_027
成川題詠
061_027
箕城 贈朴生
061_027
卷五
061_028
五言絕句
061_028
別李禮長
061_028
登驛樓
061_028
畫梅
061_028
畫竹
061_028
詠畫六首
061_028
效崔國輔體四時四首
061_028
芳林驛
061_029
畫鶴
061_029
送人
061_029
次栗谷韻 題僧軸
061_029
戲題主人壁
061_029
題金醉眠山水障子面四首
061_029
別意
061_029
舟上 別泥丸次韻
061_030
畫
061_030
嘉林 別安生
061_030
錦江 別鄭子愼
061_030
上柳西坰
061_030
題畫二首
061_030
宿安州村舍
061_030
逢金爾玉別
061_030
題畫四首
061_030
次韻
061_031
贈人二首
061_031
題金悅卿寫眞帖
061_031
題畫帖
061_031
次尹恕中韻
061_031
題金養松畫帖
061_031
佛日庵 贈因雲釋
061_031
楓岳晴雲
061_031
平沙曉月
061_031
鐥淵村燈
061_031
新店秋砧
061_032
蓮塘夜雨
061_032
舞鶴暮嵐
061_032
南山冬柏
061_032
雙亭納涼
061_032
暮浦歸帆
061_032
六言絕句
061_032
無題二首
061_032
奉呈柳摠戎
061_032
別韓書狀
061_032
寄妓生
061_032
黃州 寄申子方
061_033
無題二首
061_033
卷六
061_034
七言絕句
061_034
長信宮四時詞
061_034
平調四時詞
061_034
送別柳摠戎
061_034
祭冢謠
061_034
拜新月
061_034
襄陽曲
061_034
出塞曲
061_034
錦帶曲 贈孤竹使君
061_035
錦衣曲
061_035
江南曲
061_035
采蓮曲 次大同樓船韻
061_035
刈麥謠
061_035
移家怨
061_035
橫塘曲
061_035
仙桂曲 題月娥帖
061_035
附[次韻](崔孤竹)
061_035
降仙曲 次靑澗亭韻
061_035
拾穗謠
061_036
撲棗謠
061_036
步虛詞
061_036
江陵書事
061_036
宮詞
061_036
許李臺口呼
061_036
江陵東軒
061_037
成佛庵
061_037
山行關外作
061_037
龍津
061_037
西江漫興
061_037
題畫
061_037
竹頭菴
061_037
遊鏡湖 贈宋德求
061_037
贈道人
061_037
贈僧
061_037
三日浦
061_038
靈谷尋春
061_038
贈人
061_038
松京懷古
061_038
寄謝慕伯
061_038
鍾城道中
061_038
磨天嶺 題院壁
061_038
題甓寺
061_038
宿洞宮
061_038
尋伽倻山
061_038
清道九日
061_038
曉發孤山村
061_038
尋金子佩山屋
061_039
題睡軒壁
061_039
挽南格菴師古
061_039
病中 折花對酒吟
061_039
寄問鵝溪相公
061_039
哭楊蓬萊
061_039
題湖寺僧卷
061_039
贈樂師許億鳳
061_039
西京
061_039
嘉山道中
061_039
題南塘
061_039
送人從軍
061_039
送許功彦朝天
061_040
送李觀松之龍灣
061_040
送鄭士徽點馬之京
061_040
催粧 戲贈蛟山
061_040
別意
061_040
湖南 簡恕仲
061_040
題僧軸
061_040
洛中有感
061_040
東郊 訪許美叔
061_040
望孤竹村莊
061_041
巫山道中 逢雨感懷
061_041
控江亭
061_041
成川 贈京妓喚御史
061_041
次僧軸韻
061_041
贈李會源
061_041
上巳
061_041
江行
061_041
贈申判官
061_041
悼亡
061_041
即事
061_041
贈人
061_042
畫
061_042
贈別韓益之
061_042
題蔡景一幽居
061_042
李仁瑞家催粧詩
061_042
贈權察訪仲明
061_042
送尹佐郞暉之上京
061_042
題畫
061_042
送人入京
061_042
呼韻
061_042
贈浙江人桂玉
061_043
秋夜淨友堂 同李栗谷話 因呼韻
061_043
題畫
061_043
寄孤竹
061_043
遊三清洞
061_043
乞火
061_043
送友人之京
061_043
滯病寧城蓮閣 示主人
061_043
題長沙倅綾陽幽居四時
061_043
杜山縣夜風雨感懷
061_044
蔓菁浦 望土亭舊業 悵然作
061_044
雨後梨花
061_044
詠梅欲開未開者
061_044
寄梁伯休
061_044
次雙阜相公淳昌東軒韻
061_044
路中憶蓀谷莊 示孤竹
061_044
對花嘆老
061_044
塞下曲 贈柳摠戎
061_044
손곡시집(蓀谷詩集)
형태서지
권수제 | 손곡시집(蓀谷詩集) |
판심제 | 蓀谷集 |
간종 | 활자본(活字本) |
간행년 | 1618年刊 |
권책 | 6권 1책 |
행자 | 9행 15자 |
규격 | 23.3×16.4(㎝) |
어미 | 上下三葉花紋魚尾 |
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
소장도서번호 | 일산古3644-54 |
총간집수 | 한국문집총간 61 |
저자
성명 | 이달(李達) |
생년 | 1539년경(중종 34) |
몰년 | 1610년경(광해군 2) |
자 | 익지(益之) |
호 | 손곡(蓀谷), 서담(西潭), 동리(東里) |
본관 | 신평(新平) |
특기사항 | 박순(朴淳)의 문인. 최경창(崔慶昌), 백광훈(白光勳)과 함께 삼당시인(三唐詩人)으로 불림 |
가계도
기사전거 :
洪州李氏系譜 및 蓀谷山人傳(許筠 撰)에 의함
행력
왕력 | 서기 | 간지 | 연호 | 연령 | 기사 | ||
중종 | 34 | 1539 | 기해 | 嘉靖 | 18 | 1 | 이해를 즈음하여 洪州에서 태어나다. |
명종조 | ~ | ~ | ~ | ~ | ~ | ~ | 鄭士龍에게 蘇軾의 시를 배우다. ○ 崔慶昌, 白光勳과 교유하면서 朴淳에게 唐詩를 배우다. 이후 5년간 두문불출하고 당시에 전념하다. |
선조 | 9 | 1576 | 병자 | 萬曆 | 4 | 38 | 靈光에서 군수인 孤竹 崔慶昌과 교유하다. |
선조 | 11 | 1578 | 무인 | 萬曆 | 6 | 40 | 南原 廣寒樓에서 林悌, 梁大樸, 白光勳 등과 詩會를 갖다. 이때 수창한 시를 모은 것이 「龍城唱酬集」이다. |
선조 | 13 | 1580 | 경진 | 萬曆 | 8 | 42 | 平壤 浮碧樓에서 崔慶昌, 徐益, 高敬命 등과 詩會를 갖다. |
선조 | 14 | 1581 | 신사 | 萬曆 | 9 | 43 | 崔岦이 질정관으로 중국에 갈 때 鄭澈, 李珥 등과 함께 송별연에 참석하다. |
선조 | 15 | 1582 | 임오 | 萬曆 | 10 | 44 | 高敬命이 瑞山 郡守로 있을 때 그곳에서 우거하다. |
선조 | 17 | 1584 | 갑신 | 萬曆 | 12 | 46 | 楊士彥을 곡하고 〈哭楊蓬萊〉 시를 짓다. |
선조 | 18 | 1585 | 을유 | 萬曆 | 13 | 47 | 〈放赦後寄荷谷〉 시를 지어 許筠을 위로하다. 〈蛟山催粧詩〉를 지어 허균의 혼인을 축하하다. |
선조 | 20 | 1587 | 정해 | 萬曆 | 15 | 49 | 〈李伯生賀至〉시를 지어 李純仁을 송별하다. |
광해군 | 1 | 1609 | 기유 | 萬曆 | 37 | 71 | 4월, 許筠에게서 편지를 받다. |
광해군 | 2 | 1610 | 경술 | 萬曆 | 38 | 72 | 〈贈柳摠戎紫騮馬歌〉 시를 지어 柳珩을 칭송하다. ○ 이즈음 졸하다. |
광해군 | 5 | 1613 | 계축 | 萬曆 | 41 | - | 柳珩이 저자의 시를 모아 「西潭集」을 편집하다.(李睟光의 跋) |
광해군 | 10 | 1618 | 무오 | 萬曆 | 46 | - | 許筠이 활자로 문집을 간행하다.(許筠의 序) |
숙종 | 19 | 1693 | 계유 | 康熙 | 32 | - | 慶州 府尹 許潁이 목판으로 문집을 중간하다.(任相元의 序) |
기사전거 :
鶴山樵談(許筠 撰), 霽湖詩話(梁慶遇 撰), 晴窓軟談(申欽 撰)에 의함
편찬및간행
저자의 시는 저자의 출신이 비천하여 귀중히 여겨지지 않았고, 또 후손이나 문인이 없었던 관계로 저술한 수천 편이 모두 散佚되고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 저자의 시를 처음으로 정리한 사람은 崔慶昌의 조카이자 저자의 제자였던 柳珩인데 그는 1613년경 海西 節度使로 있으면서 저자의 시를 모아 1권으로 편차하여 西潭集이란 이름으로 간행하려고 李睟光에게 발문을 받았다. 그러나 西潭集은 현재 전하지 않아 실제 간행되었는지의 여부도 확인할 수 없다.
이와 별도로 詩 弟子인 許筠이 평소에 기억해 두었던 시 200여 수와 洪有炯에게서 얻은 130여 수 등 모두 360여 수를 李再榮에게 유별로 편차하여 6권으로 만들도록 하고 1618년(광해군 10) 자신의 서문을 붙여 활자로 간행하였다. 《초간본》 이 초간본은 서문이 빠져 있는데 그것은 허균이 이해에 역모로 복주되었기 때문인 듯하다.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일산古3644-54),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D1-A372) 등에 소장되어 있다.
그 후 慶州 府尹 許潁이 祕閣本을 얻어서 초간본의 서문인 허균의 글과 함께 任相元의 서문을 받아 1693년(숙종 19)에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중간본》 이 중간본은 권1은 오언절구, 권2는 칠언절구, 권3은 오언율시, 권4는 칠언사운, 권5는 古風, 권6은 歌로 되어 있어 초간본과 구성이 다르고 같은 형식 내에서도 시의 배열을 달리한 것이 있다. 예를 들면 권3의 오언율시 중 〈別沈秀才大亨〉, 〈詠柳家孤鴈〉 등 3수를 중간본에서는 排律로 간주하여 권말에 수록하였다. 그 외에는 작품의 수나 제목 등의 수정없이 그대로 중간하였는데 판이 마모된 것이 심하여 식별하기 힘든 곳이 많다. 현재 규장각(奎5223), 국립중앙도서관(한45-가20), 장서각(4-6178) 등에 소장되어 있다. 이 밖에 필사본도 몇 군데 전하고 있다.
본서의 저본은 許筠이 6권 1책으로 편차하여 1618년 활자로 간행한 초간본으로 국립중앙도서관장본이다. 이 중 저본에 缺落되어 있는 서문은 동일본인 日本 內閣文庫藏本(17820毛2, 集136-1)을 촬영한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마이크로 필름(古M3644-42)에서 발췌 보충하였다.
西潭集跋(李睟光 撰, 芝峯集 卷21) 및 본집의 序(許筠, 任相元 撰)에 의함
구성과내용
본 시집은 6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권수에는 1618년에 쓴 許筠의 서가 실려 있고 목록은 없다.
허균은 〈蓀谷山人傳〉을 짓는 등 저자의 遺事와 遺文의 정리에 힘썼으며 자신의 「鶴山樵談」이나 「惺叟詩話」에도 저자의 시를 많이 인용하였다. 저자는 鄭士龍에게 蘇軾의 시를 배웠는데, 崔慶昌ㆍ白光勳을 만난 뒤 詩風의 일대 전환을 이루어 우리나라 三唐詩人의 대표적인 존재가 되었다. 허균은 그의 시가 李白을 근본으로 하고 王維와 劉長卿을 출입하여 唐風을 충실히 체득함으로써 우리나라 詩家 중 따라갈 자가 없다고 극찬하였다.
권1에는 古風 10제가 실려 있다. 첫머리의 〈班竹怨〉은 舜임금의 두 비인 娥皇, 女英의 일을 읊은 것으로, 權韠은 이 시를 두고 ‘李白의 시집 속에 넣어두면 안목을 갖춘 이도 누구의 시인지 판별하기 어려울 것이다.’라고 평하였다.
권2에는 歌 6제가 실려 있다. 첫머리의 〈漫浪舞歌〉는 樂府詩의 형식을 빌려 漫浪翁의 劍舞 동작을 읊은 것으로, 중국사신 朱之蕃은 이 시를 두고 이백의 시와 차이가 없다고 감탄하였다 한다.
권3에는 五言律 83제, 권4에는 七言四韻 60제, 권5에는 五言絶句 38제와 六言絶句 6제가 실려 있다. 저자는 漢吏文學官을 잠시 지낸 것 외에는 평생을 떠돌아다니는 방랑생활을 했기에 離別과 客愁에 대한 시가 많다. 권4의 〈上龜城林明府〉와 〈留別洪君瑞〉 같은 것이 그 예이다. 권6은 七言絶句로 저자가 가장 즐겨 지었던 형식이며 작품 수도 가장 많은 104제가 실려 있다. 여기에는 詞, 謠, 曲, 怨 등이 붙은 제목이 적지 않은데 이 또한 唐詩의 영향으로 보인다. 이 중 〈刈麥謠〉, 〈移家怨〉은 田家 아낙의 고통과 전쟁 중 피난을 위해 이사하는 백성의 질고를 잘 형상화한 것으로 「惺叟詩話」에 전한다.
ⓒ 한국고전번역원 | 김기빈(金圻彬) |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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蓀谷集序[許筠]
恭惟我國家。文運休明。學士大夫。以詩鳴者。殆數十百家。咸自謂人握靈蛇之寶。林然盛哉。摡而揆之。則途有三焉。其和平淡雅。圓適均稱。渾然成一家言者。推容齋相。而駱峯及永嘉父子擅其華。其次則昌大莽莽。富蓄博材。爲一代大方家者。如四佳,佔畢,虛白輩騁其雄。又其次則崷崒峻峭。締思緻巧。以瑰瑋險絶爲貴者。如訥齋,湖陰,蘇相,芝川諸鉅公衒其杰。玆俱韙矣。然其優游敦厚。響正格高。定軌於開天,大曆者。世尠其人。識者猶有所憾云。往在弘,正間。忘軒李胄之始學唐詩。沈著奇麗。而冲菴金文簡公繼起爲韋錢之音。二公足稱一班。而惜也年命恨之。逮在隆,萬間。思菴相知尊盛李。所詠頗淸邵。模揩雖不足。而鼓舞攸賴。晩得崔,白。遂張大楚。所謂夥涉之啓劉,項者非耶。同時有蓀谷翁者。初學杜,蘇於湖陰。其吟諷者旣鴻縝純熟矣。及交崔,白。悟而汗下。盡棄其所學而學焉。其詩本源供奉。而出入乎右丞,隨州。氣溫趣逸。芒麗語澹。其艶也若南威,西子袨服而明粧。其和也若春陽之被百卉。其淸也若霜流之洗巨壑。其響亮也若九霄笙鶴彷像乎五雲之表。引之霞綺風淪。鋪之璧坐璣馳。鏗而厲之。則瑟悲而球戛。抑而按之。則驥頓龍蟄。徐行其所無事。則平波滔滔然千里朝宗。而泰山之雲。觸石爲白衣蒼狗。置在開天,大曆間。瑕不廁王,岑之列。而較諸國朝諸名家。其亦瞠乎退三舍矣。翁地微。人多不貴重之。所著述累千篇。皆散失無存。不佞少日以仲兄命。問詩於翁。賴識塗向。及其死也。惜其遺文泯沒不傳。爲裒平日所臆記者。詩二百餘首。謀欲災木。又從洪上舍有炯許。續得百三十餘首。令李君再榮合而彙數。類之爲六卷云。夫翁之詩。度越國家諸名家。豈待鄙文爲不朽哉。雖然。掇拾遺詩。期以傳千載者。不佞心也。其可避汚佛首之誚乎。至於上下數百年。評隲諸老。以及乎翁者。極知僭越而駴一時之人。要之久則論定也。夫豈無一人知言哉。遂書此弁之。翁姓李。名達。字益之。雙梅堂之庶裔孫。蓀谷其自號也。
萬曆戊午季春。
陽川許端甫氏序。
恭惟我國家(공유아국가) : 삼가 생각건대 우리나라는
文運休明(문운휴명) : 문운(文運)이 아름답고 밝아서
學士大夫(학사대부) : 학사 대부가
以詩鳴者(이시명자) : 시로써 울린 자가
殆數十百家(태수십백가) : 거의 수십 수백가로,
咸自謂人握靈蛇之寶(함자위인악령사지보) : 모두가 저마다 영사(靈蛇)의 보주(寶珠)를 쥐었다 여기니
林然盛哉(림연성재) : 많기도 하고 성하기도 하구나.
摡而揆之(개이규지) : 대개 헤아려 보면
則途有三焉(즉도유삼언) : 길이 셋이 있었으니
其和平淡雅(기화평담아) : 그 화평 담아하고
圓適均稱(원적균칭) : 원만하고 적의한 것이 고루 맞아서
渾然成一家言者(혼연성일가언자) : 혼연히 일가의 말을 이룬 것으로는
推容齋相(추용재상) : 용재(容齋 이행(李荇)의 호) 정승을 추대하는데
而駱峯及永嘉父子擅其華(이락봉급영가부자천기화) : 낙봉(駱峯 신광한(申光漢)의 호) 및 영가(永嘉) 부자는 그 화려함을 차지하였고,
其次則昌大莽莽(기차즉창대망망) : 그 다음은 창대(昌大)하고 망망하고
富蓄博材(부축박재) : 정축이 풍부하고 재료가 엄박하여
爲一代大方家者(위일대대방가자) : 한 시대의 대방가(大方家)가 된 이는
如四佳佔畢虛白輩(여사가점필허백배) : 사가(四佳 서거정(徐居正)의 호)ㆍ점필(佔畢 김종직(金宗直)의 호)ㆍ허백(虛白 성현(成峴)의 호) 같은 무리로
騁其雄(허백배빙기웅) : 그 웅대함을 치달렸고,
又其次則崷崒峻峭(우기차즉추줄준초) : 또 그 다음은 뾰족하고 우뚝하여
締思緻巧(체사치교) : 생각이 치밀하고 기교가 섬세하며
以瑰瑋險絶爲貴者(이괴위험절위귀자) : 괴위(瓌㙔)와 험절(險絶)로써 귀함을 삼은 이는
如訥齋(여눌재) : 눌재(訥齋 박상(朴祥)의 호)ㆍ
湖陰(호음) : 호음(湖陰 정사룡(鄭士龍)의 호)ㆍ
蘇相(소상) : 소상(蘇相 소세양(蘇世讓)을 가리킴)ㆍ
芝川(지천) : 지천(芝川 황정욱(黃廷彧)의 호) 같은
諸鉅公衒其杰(제거공현기걸) : 여러 거공인데
玆俱韙矣(자구위의) : 모두 그 걸출함을 자랑하였으니 위대하다.
然其優游敦厚(연기우유돈후) : 그러나 그 부드럽고 너그럽고 도탑고 후하며
響正格高(향정격고) : 향(響)이 바르고 격(格)이 높아
定軌於開天(정궤어개천) : 개원(開元 당 현종(唐玄宗)의 연호)ㆍ천보(天寶 당 현종(唐玄宗)의 연호)ㆍ
大曆者(대력자) : 대력(大歷 당 대종(唐代宗)의 연호)에 법을 정할 수 있는 자는,
世尠其人(세선기인) : 세상에 그럴 만한 사람이 적으니,
識者猶有所憾云(식자유유소감운) : 아는 사람은 오히려 서운해하는 바가 있다.
往在弘(왕재홍) : 예전에 홍치(弘治 명 효종(明孝宗)의 연호)ㆍ
正間(정간) : 정덕(正德 명 무종(明武宗)의 연호) 간에
忘軒李胄之始學唐詩(망헌리주지시학당시) : 망헌(忘軒) 이주지(李冑之)가 비로소 당시를 배웠는데
沈著奇麗(침저기려) : 차분하고 아름다웠으며,
而冲菴金文簡公繼起爲韋錢之音(이충암금문간공계기위위전지음) : 충암(沖菴) 김 문간(金文簡) 공이 뒤이어 일어나 위응물(韋應物)ㆍ전기(錢起)의 소리를 했으니,
二公足稱一班(이공족칭일반) : 이 두 분은 한 무늬를 보았다 이를 만하지만,
而惜也年命恨之(이석야년명한지) : 아깝다! 일찍 죽어한스럽다.
逮在隆(체재륭) : 뒤미쳐 융경(隆慶 명 목종(明穆宗)의 연호)ㆍ
萬間(만간) : 만력(萬歷 명 신종(明神宗)의 연호) 간에
思菴相知尊盛李(사암상지존성리) : 사암(思菴 박순(朴淳)의호) 상공이 성당의 이백(李白)을 존숭하여,
所詠頗淸邵(소영파청소) : 읊은 바가 자못 맑고 높았으니
模揩雖不足(모개수불족) : 법도는 비록 부족하지만
而鼓舞攸賴(이고무유뢰) : 고무하는 것은 힘입은 바가 있었다.
晩得崔白(만득최백) : 늦게 최경창(崔慶昌)과 백광훈(白光勳)을 얻어
遂張大楚(수장대초) : 드디어 초나라를 넓히고 키웠으니,
所謂夥涉之啓劉項者非耶(소위과섭지계류항자비야) : 이른 바 진섭(陳涉)이 유방(劉邦)과 항우(項羽)의 길을 열어 준 격이 아니겠는가?
同時有蓀谷翁者(동시유손곡옹자) : 같은 때에 손곡옹(蓀谷翁)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初學杜蘇於湖陰(초학두소어호음) : 처음에 두보(杜甫)와 소동파(蘇東坡)를 호음(湖陰)에게서 배웠다.
其吟諷者旣鴻縝純熟矣(기음풍자기홍진순숙의) : 그 읊고 읊조린 것이 이미 웅대, 치밀하였으나
及交崔白(급교최백) : 최경창과 백광훈을 사귀게 되자
悟而汗下(오이한하) : 배움의 허술함을 깨닫고 진땀이 흘러내리므로
盡棄其所學而學焉(진기기소학이학언) : 그간 배운 바를 모두 버리고 다시 배우게 되었다.
其詩本源供奉(기시본원공봉) : 그의 시는 공봉(供奉 이백(李白)을 가리킴)에 근본을 두었고
而出入乎右丞隨州(이출입호우승수주) : 우승(右丞 왕유(王維)를 가리킴)과 수주(隨州 유장경(劉長卿)을 가리킴)를 드나들어
氣溫趣逸(기온취일) : 기운이 다사롭고 지취가 뛰어나며
芒麗語澹(망려어담) : 빛이 곱고 말이 담담하며
其艶也若南威西子袨服而明粧(기염야약남위서자현복이명장) : 그 곱기는 남위(南威 춘추 시대의 미녀)와 서시(西施)가 성복(盛服)하고 밝은 화장을 한 듯하고,
其和也若春陽之被百卉(기화야약춘양지피백훼) : 그 온화함은 봄볕이 온갖 풀을 덮는 듯하며,
其淸也若霜流之洗巨壑(기청야약상류지세거학) : 그 맑음은 서리 같은 물줄기가 큰 골짜기를 씻어 흐르는 듯하고,
其響亮也若九霄笙鶴彷像乎五雲之表(기향량야약구소생학방상호오운지표) : 그 울림의 통량함은 마치 높은 하늘에서 학 타고 피리 부는 신선이 오색 구름 밖을 떠도는 듯하며,
引之霞綺風淪(인지하기풍륜) : 끌어당기면 노을빛 비단과 미풍의 잔물결 같고
鋪之璧坐璣馳(포지벽좌기치) : 깔아놓으면 구슬이 앉고, 옥이 달리며
鏗而厲之(갱이려지) : 두드리고 갈면
則瑟悲而球戛(즉슬비이구알) : 비파의 애절함과 구슬의 울림이요,
抑而按之(억이안지) : 억제하고 누르면
則驥頓龍蟄(즉기돈룡칩) : 기마(驥馬)가 멈추고 용이 움츠렸고,
徐行其所無事(서행기소무사) : 그 일없는 때에 천천히 걸음은
則平波滔滔然千里朝宗(즉평파도도연천리조종) : 평탄한 물결이 넘실넘실하여 천리를 흘러가는 듯하며
而泰山之雲(이태산지운) : 태산의 구름이
觸石爲白衣蒼狗(촉석위백의창구) : 바위에 대질러 흰 옷도 되고 푸른 개도 되어,
置在開天大曆間(치재개천대력간) : 개원(開元 당 현종(唐玄宗)의 연호)ㆍ천보(天寶 당 현종(唐玄宗)의 연호)ㆍ대력(大歷 당 대종(唐代宗)의 연호)의 사이에 놓아도
瑕不廁王岑之列(하불측왕잠지렬) : 왕유(王維)와 잠삼(岑參)의 대열에서 멀리 기울이지 않으며,
而較諸國朝諸名家(이교제국조제명가) : 우리나라 여럿 이름난 작가들과 비교하면
其亦瞠乎退三舍矣(기역당호퇴삼사의) : 그들 또한 눈이 휘둥그래져 90리나 물러설 것이다.
翁地微(옹지미) : 옹은 지체가 미천하여
人多不貴重之(인다불귀중지) : 사람들이 귀중히 여기지 않는 자가 많으니,
所著述累千篇(소저술루천편) : 저술한 것이 여러 수천 편이었으나
皆散失無存(개산실무존) : 모두 흩어져 없어지고 남아 있는 것이 없다.
不佞少日以仲兄命(불녕소일이중형명) : 나는 젊었을 때 중형의 명으로
問詩於翁(문시어옹) : 옹에게 시를 물어
賴識塗向(뢰식도향) : 방향을 아는 데 힘입은 바 있다.
及其死也(급기사야) : 그가 죽으매
惜其遺文泯沒不傳(석기유문민몰불전) : 남긴 글이 민멸되어 전하지 못하는 것을 아까워하며
爲裒平日所臆記者(위부평일소억기자) : 평소에 기억하고 있던
詩二百餘首(시이백여수) : 시 2백여 수를 모아
謀欲災木(모욕재목) : 판각하려고 했는데
又從洪上舍有炯許(우종홍상사유형허) : 또 상사(上舍) 홍유형(洪有炯)의 처소에서
續得百三十餘首(속득백삼십여수) : 1백 30여 수를 얻게 되어
令李君再榮合而彙數(령리군재영합이휘수) : 이군 재영(李君再榮)을 시켜 합하여 모으고
類之爲六卷云(류지위륙권운) : 분류하여 여섯 권을 만들게 하였다.
夫翁之詩(부옹지시) : 옹의 시는
度越國家諸名家(도월국가제명가) : 우리나라 여러 이름난 작가를 넘어섰으니,
豈待鄙文爲不朽哉(기대비문위불후재) : 어찌 나의 글을 기다려 썩지 않는 것이 되랴.
雖然(수연) : 그러나
掇拾遺詩(철습유시) : 남긴 시들을 주워 모아
期以傳千載者(기이전천재자) : 천 년 뒤에까지 전하자는 것이
不佞心也(불녕심야) : 나의 마음인데
其可避汚佛首之誚乎(기가피오불수지초호) : 부처님의 머리를 더럽혔다는 나무람을 회피하겠는가?
至於上下數百年(지어상하수백년) : 위아래 수백 년에 이르러
評隲諸老(평척제로) : 여러 노대가(老大家)를 평하고서
以及乎翁者(이급호옹자) : 옹을 언급한다는 것이
極知僭越而駴一時之人(극지참월이해일시지인) : 너무나도 참월(僭越)하여 한 시대의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것임을 알고 있으나
要之久則論定也(요지구즉론정야) : 오래 되면 의논은 정해질 것이니,
夫豈無一人知言哉(부기무일인지언재) : 어찌 한 사람도 말을 아는 자가 없겠는가?
遂書此弁之(수서차변지) : 드디어 이를 써서 서를 삼는다.
翁姓李(옹성리) : 옹의 성은 이(李)요
名達(명달) : 이름은 달(達)이며
字益之(자익지) : 자는 익지(益之)로
雙梅堂之庶裔孫(쌍매당지서예손) : 쌍매당(雙梅堂 이첨(李詹)의 호)의 서후손[庶裔]인데
蓀谷其自號也(손곡기자호야) : 손곡(蓀谷)은 그의 자호(自號)이다.
萬曆戊午季春(만력무오계춘) : 만력 무오 계춘에
陽川許端甫氏序(양천허단보씨서) : 양천 허 단보씨가 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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