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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自
君在府中 恒深世道之憂不得一番相
問豈相念之情耶適載叔兄來訪
槩聞近來
所履之安深慰戀思之情但所謂世道之
慮則更有甚於向來者盖以前所未聞
者復有詳聞故也爲
君之慮莫若早爲自安之計而醫局 之
爭本府
先輩已定之䂓鄕人遵守而不敢不敬者今幾
年所而壞之自
君 君將欲置身於何地此事處之不難而
君所以爲身謀者太踈而慢以此益望
君早爲■■早避善後之計也書不盡意若問之
此兄想能道吾意也不宣謹狀
辛巳 五月九日 璶
鞍馬纔卸
高斾戾止得半餉款可謂
奇矣冒風雪
歸稅安定否弟今日爲宗
系事暫往元唐 還過
長至祀事徐圖一進
耳適憑來便奉謝昨
枉仍將筆墨各一侑簡
幸
領入伏惟
兄照
至前二日弟德鄰 頓
[번역문]
1701년(숙종27)에 5월에 장신이 의국(醫局)의 분쟁에 대한 대처가 잘못되었다며 상대방에게 조언을 하는 간찰과 조덕린이 자신을 찾아온 것에 대한 감사와 함께 붓과 먹을 동봉한 간찰
〈1〉
자네가 부(府)에 있은 뒤로 늘 세도(世道)에 대한 걱정이 깊어 안부 한번 묻지도 못했으니 어찌 서로를 그리워하는 정이라고 하겠나. 마침 재숙(載叔) 형이 방문해서 근래 편안하게 지낸다는 것을 대략 듣고는 그리워하는 마음에 매우 위로가 되었네. 이른바 세도에 대한 염려가 이전에 비해 더욱 심해졌다는 것은 대개 전에 듣지 못했던 것을 다시 상세하게 들었기 때문이라네. 자네를 위해서는 일찌감치 스스로를 편안하게 할 계책을 세우는 것이 최고라네. 의국(醫局)의 분쟁은 본부의 선배들이 정한 규정을 지방 사람들이 준수하여 공경하게 따른 지 지금 몇 년이 지났는데 자네에게서 무너진다면 자네는 앞으로 어떻게 처신하려고 그러는 것인가? 이 일은 대처하기 어렵지 않지만 자네가 자신을 위해 생각하는 것이 너무 엉성하고 오만하다네. 이 때문에 자네가 일찌감치 ■■ 미리 피하여 뒷일을 잘 처리할 계획을 세우는 것을 더욱 바라네. 글로는 마음을 다 전할 수가 없으니, 만약 이 형에게 묻는다면 내 뜻을 잘 말해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네. 이만 줄이네. 삼가 편지를 쓰네.
신사년(1701, 숙종27) 5월 9일에 신(璶)1)
〈2〉
옥천(玉川) 조덕린(趙德鄰) 간찰(簡札)
임기를 마치자마자 귀하께서 찾아주시어 짧게 이야기를 나누니 특별하다고 하겠습니다. 눈보라를 무릅쓰고 돌아가셨는데 편안하십니까? 저는 오늘 종계(宗系)의 일 때문에 잠시 원당(元唐)에 갔다가 돌아왔습니다. 장지(長至; 동지)의 제사는 한번 다녀오려고 합니다. 마침 이곳에 온 인편을 통해 어제 찾아주신 것에 감사 편지를 드리고 붓과 먹을 각각 하나씩 동봉하니, 부디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삼가 형께서는 살펴주십시오.
동지 이틀 전 아우 덕린(德鄰)2)은 조아리며 올림.
1)장신(張璶)1629~171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 참조.
2)조덕린(趙德鄰)1658~1737.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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