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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陽人문화유적❀

저전리 쌍계서당,성암정,존경재

by 晛溪亭 斗井軒 陽溪 2016.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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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전리(苧田里)'安東布 始母 靑松沈氏할머니'

모시밭이 많다고 모시밭이라 불렀는데 한자 표기로

모시 저(苧)자에 밭 전(田)자를 써서 저전이라 하였다.

자연마을은 모시밭, 거리마, 정외, 조랏, 양지마, 삼거리, 무지랑 등

7개이며 206 가구에 616명의 주민이 살고 있으며,

옛 부터 한양조씨들이 모여 살았다.

한양조씨 저전세거지향

 

 

 

 

 최근에 건립한

"한양조씨 모시밭 입향 행적사"

 

 

▼한양조씨 문중의 "오른쪽 앞 쌍계서당 & 왼쪽 위 성암정" 새로 대문은 보수

 

 

 성암정(星巖亭)

제비원 석불에 "나무아미타불"을 새겼다고 전해지는 주사 조병태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1961년 세운 정자.

 

▼앞 왼쪽 성암정, 위쪽 오른편 쌍계서당 

 

 

 ▼맨 위쪽 쌍계서당

 

 쌍계서당(雙溪書堂)

한양조씨 시조의 13세 손인 조적의 증손자인 조덕립.조예립 형제가 부친 조사룡을 위해 19세기 초에 지어

학문을 닦고 문준자제들을 가르치던 곳. 학남초등학교의 모태가 된다. <뒷쪽 산등성이에 큰바위 7개가 북드칠성 모양으로 놓여 있어 "칠성바우"라 하며, 아기를 낳지 못하는 부인들이 치성을 올리면 아기를 낳을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존경재

 

 

▲존경재(尊敬齋)

조적의 부인 청송심씨의 재실로 매년 10월 10일 제사지냄.

<1519년 기묘사화 때 한양조씨가 역적으로 몰리게 되자 조종(趙琮)의 아들 5형제가 영주로 몸을 피하였는데, 이후 넷째 아들 조신완(趙信琬)은 봉화군 소천면 대현리에 정착하여 세거하였다. 조신완의 증손자인 조적(趙績)이 세상을 뜨자 부인 청송심씨는 막막한 두메산골을 벗어날 결심을 하고 아들 3형제를 데리고 무작정 길을 떠나 저전리에 정착하여 한양조씨 집성촌이 이루어졌다고 전한다.>

 

'安東布 始母 靑松沈氏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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