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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陽人문화유적❀

조종서(趙鍾瑞) :1899己亥년 8월 13일생으로 京畿道 富川郡 龍遊面 南北里(경기도 부천군 용유면 남북리) 872번지, 1919년 7월 19일 보안법 위반으로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1919년 9..

by 晛溪亭 斗井軒 陽溪 2023.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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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서(趙鍾瑞)

기본사항, 주요행적, 기타사항
1899己亥년 8월 13일생으로 본적, 출생지, 주소는 모두 京畿道 富川郡 龍遊面 南北里(경기도 부천군 용유면 남북리) 872번지임. 직업은 없으며 신분은 양반임. 키는 165cm가량임.
1919년 7월 19일 보안법 위반으로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1919년 9월 27일 기결수로서 서대문감옥에 수감되었다가 1920년 4월 28일 특별사면(恩免)으로 출소함(지문번호 34544/33443).
관련자료에 따르면, “경기도 부천군 농업종사자 조명원(趙明元)은 3월 24일 조종서(趙鍾瑞)·최봉학(崔奉學)·문무현(文武鉉) 등과 혈성단(血誠團)을 조직하고 격문 80여종과 신서(信書) 1통을 작성하였다. 이들은 각자 이것을 “문자를 해독하리라 생각되는 이민(里民)에게 배부, 조선독립 시위운동에 참가하도록 선동하여 두었다가”, 3월 28일 전에 선동해 둔 사람과 기타 150 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만세시위을 하였다.”라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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