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성 지 순 례 ♥

출애굽 40년간 광야경로

by 晛溪亭 斗井軒 陽溪 2018. 3. 20.
반응형

※새로운 출애굽 40년간 광야경로※

 

※기존 출애굽 40년간 광야경로※

 

 

※기존 출애굽 40년간 광야경로※

 

 

※기존 출애굽 40년간 광야경로※

 

※기존 출애굽 40년간 광야경로※

 

※기존 출애굽 40년간 광야경로※

 

 

※출애굽 40년간 광야경로

애굽에서 시나이 반도를 지나서 팔레스타인으로 들어가는 가장 일반적인 길은 블레셋 사람의 길 (출13:17) 이다. 그러나 블레셋 길에는 막강한 애굽의 군사력이 배치되어 있었다.

'많은 믹돌들'이 있었던 것이다. 이 군사 진지는 시나이 반도로부터의 침입을 막고 대상로를 보호하거나, 팔레스타인이나 아라비아 반도로의 정벌을 위한 군 주둔지들이었다. 실제로 모세의 출애굽은 시나이 반도를 남행하는 우회로를 택하게 된다

 

비돔

'아톰신의 집'이라는 뜻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로 노역하던 국고성 건축지이다.

※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로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 (출 1:11)

 

숙곳

'와디 투밀랏'의 동쪽에 있는 현재의 '체쿠'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애굽에서 추방된 자들이 대개 경유하던 길목이다.

※ 이스라엘 자손이 라암셋에서 발행하여 숙곳에 이르니 유아 외에 보행하는 장정이 육십만 가량이요 (출 13:20)

※ 그들이 숙곳에서 발행하여 광야 끝 에담에 장막을 치니 (출 13:20)

※ 이스라엘 자손이 라암셋에서 발행하여 숙곳에 진쳤고 숙곳에서 발행하여 광야 끝 에담에 진쳤고 (민 33:5~6)

 

믹돌과 바다사이, 바알스본 앞

바알스본 : '남쪽의 바알' 또는 '북방의 신'이라는 뜻을 지닌다. 이 명칭은 하애굽의 여러 지역에서 경배했던 가나안의 신으로부터 파생되었다. 이 지명은 하나의 장소를 이야기하는 것이기보다 셈계의 예배처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좋다. 그것은 바알스본이나 믹돌이 하나의 특정 지명이나 마을이 아닌 일반적인 명사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팀사호 근처의 투쑴 언덕에서는 해마다 7월 14일에는 종교 축제가 있다.

 

믹돌

'요새' 또는 '탑'이라는 뜻을 지닌다. 시나이 반도로부터 유입되는 유목민들이나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세워 놨던 여러 요새의 하나였을 것이다. 여러 믹돌 둥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의 경로로는 텔 엘헤이르 (tell el Heir) 로서 펠루쉬움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지역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북동 쪽의 성 (성채 Fortress) 펠루시움 남쪽 18Km, 팔레스타인에서 이집트로 가는 중의 첫 도시였다. 우리나라의 전방의 군사도시 정도였을 것이다.

 

비하히롯 (Pi hahiroth)

'운하의 입'의 뜻을 지닌 지역으로 이집트 지명은 Pi kerehet 또는 Pi keheret ('퀘르헷 여신의 집')이다. 이집트의 여신 하토르의 신전이 있었던 곳이기도하다. 팀사호 남쪽의 게발 마리암 (마리암 山) 지역, 현재의 세라피움(Serapium)으로 추정한다.

※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돌쳐서 바다와 믹돌 사이의 비하히롯 앞 곧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에 장막을 치게 하라 (출 14:2)

※ 애굽 사람들과 바로의 말들, 병거들과 그 마병과 그 군대가 그들의 뒤를 따라 바알스본 맞은편 비하히롯 곁 해변 그 장막 친 데 미치니라 (출 14:9)

※ 에담에서 발행하여 바알스본 앞 비하히롯으로 돌아가서 믹돌 앞에 진쳤고 (민 33:7)

너희는 여호와를 찬양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자를 바다에 던지우셨음이라 (출 15:21)

 

홍해

이스라엘 백성이 건넌 홍해는 '아흐마드 함디 터널' 북쪽 지역의 '팀사' 호수와 '비터(Bitter)' 호수 지역일 것이다. 성경에서는 '갈대바다'로 언급되고 있는데 아마도 갈대(파피루스 등)가 무성했던 때문일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건넜던 홍해의 위치는 현재의 와디 투밀라트 동쪽의 팀사호로 추정한다. 물이 갈라지는 사건은 만젤라 호에서 목격된 것을 토대로 할 수 있다.

 

에담 광야

'에담'의 뜻은 '방어벽' 이고, '수르'의 뜻은 '성벽'이다. 같은 지역을 표현하고 있는 이집트어와 히브리어이다. 이 지명의 유래는 이집트 본토로 유입하는 유목민들이나 이방인들을 제지하기 위하여 현재의 수에즈 운하지역을 중심으로 길게 방어벽(믹돌)을 쌓아 두었던 데에서 유래한다. 현재 '엘림 광야'로 부르고 있는 이 지역의 지형적인 특색은 거의 풀이 자라지 않는 벌판이 펼쳐지고 있다는 점이다.

※ 숙곳에서 발행하여 광야 끝 에담에 진쳤고 에담에서 발행하여 바알스본 앞 비하히롯으로 돌아가서 믹돌 앞에 진쳤고 하히롯 앞에서 발행하여 바다 가운데로 지나 광야에 이르고 에담 광야로 삼 일길쯤 들어가서 마라에 진쳤고 (민 33:6~8)

※ 블레셋 사람을 크게 도륙하고 내려가서 에담 바위 틈에 거하니라 (삿 5:8)

※ 유다 사람 삼천 명이 에담 바위 틈에 내려가서 삼손에게 이르되 너는 블레셋 사람이 우리를 관할하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같이 행하였느냐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들이 내게 행한 대로 나도 그들에게 행하였노라 (삿 5:11)

 

오윤무사

'모세의 우물'이라고 부른다. 수에즈에서 54 Km, 터널에서 홍해변으로 남쪽 26 Km 지점에 있다. 한때 10여개의 우물(샘)과 500여 그루의 종려나무가 자리했던 이곳에는 현재 거의 말라가는 우물 하나가 시멘트로 단장된 가운데 있고, 주위에는 많은 야자수 (성경에는 종려나무로 기록되어 있다) 들이 있다. 그리고 이 종려나무 외의 다른 수종의 나무가 보이는데 이 나무는 상수리과에 해당하는 에셀 나무이다.

초기 여행자들의 기록에는 야자수 숲과 연중 마르지 않는 10여개의 샘이 있는 아름다운 오아시스로 묘사되어 있지만 현재는 그간의 중동전 등으로 파괴되어 그 아름다움은 찾아볼 수 없다. 1798년 12월 하순,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은 이집트 원정 과정 중 수에즈에 머무는 동안 이곳을 방문 하기도 하였다.

 

마라

'쓰다'는 뜻. 홍해변에 위치한 까닭에 물이 염수 (소금물)였을 것이다. 오윤무사를 마라로 간주 하기도 하지만, 이 지점 보다 80Km 남쪽의 '아인 하와라' 지역을 마라로 추정하는 것이 더욱 설득력이 있다. 그것은 홍해 (갈대바다)를 건넌 후 3일 길 (민 33:8)을 걸어서 도달하였다는 점과 엘림과 근접한 지점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이다. 게벨 함맘 파라운 (바로의 온천산)이 멀리 보이는 홍해 변의 풀이 많이 자라 있는 지역이다. 라스 말라암 (Ras malaab : 운동장 같은 곳이라는 뜻) 이라 부르는 지점 2 Km 남쪽 지점에 해당된다. 이곳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위한 법도와 율례를 정하셨다.

※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출 15:23)

※ 히하롯 앞에서 발행하여 바다 가운데로 지나 광야에 이르고 에담 광야로 삼 일 길쯤 들어가서 마라에 진쳤고 마라에서 발행하여 엘림에 이르니 엘림에는 샘물 열둘과 종려 칠십 주가 있으므로 거기 진쳤고 (민 33:8~9)

※ 백성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마무를 지시하시니 그가 물에 던지매 물이 달아졌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출 15:24~25)

 

엘림

'아인 하와라' 남쪽 11Km 지점의 '와디 그란델'. 아흐마드 함디 터널에서 117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성경에는 물샘 열 둘과 종려 70그루가 있었다고 묘사되고 있다. 이곳에는 적절한 물을 공급해주는 담수샘이 있고, 골짜기를 따라 이어진 멋있는 협곡과 종려나무들이 그늘을 이루고 있는 곳도 있다. 비가 온 뒤에 움푹 패인 땅에는 물이 가득한 것들을 목격할 수 있다.

※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 물샘 열 둘과 종려 칠십 주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출 15:27)

 

신(SIN)광야

황량한 벌판이 끝나면서 이제는 작은 모래 산들이 점점 높아 보이기 시작한다. 석회암 절벽 사이사이에 산들이 형성 되어있다.

지형이 달라지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에담 광야에서 신광야로 들어가는 특징이다. 성경은 '엘림과 시내산 사이' (출 16:1) 로 이 지역을 언급하고 있다.

'신광야'라는 지명은 당시 이 지역에서 숭배되었던 달신 SIN에서 비롯된 지명으로 건조한 불모 해변 평야인 엘 뚜르 항구의 북쪽 엘 까아 (el qaa), 구리와 망간의 제련지역인 와디 마가라 (wadi maghara)에서 약 150 Km 지점으로 이집트의 신왕국 때에는 항구 마가라항이 있었고 지금 이 지역에는 작은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마을의 잔재가 남아 있다.

이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만나와 메추라기 사건을 처음 목격하게 된다. 음식과 물의 부족으로 고생하던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이었다. 또한 만나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후 두번째로 법도와 율례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치신다. 또한 만나를 항아리에 넣어 증거판 앞에 두어 간수하도록 하신다

※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하여 이 온 회중으로 주려 죽게 하는 도다 (출 16:3)

 

르비딤

현재의 '와디 베이란' 또는 '와디 레파이드'로 시나이 반도 최대의 오아시스 종려 숲이 있다. 홍해에서 60Km, 시내산에서 54Km 떨어진 이 '바란 오아시스'는 '시나이의 진주'로 불리운다.

창세기 21장 12절의 하갈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장소, 이드로가 양을 치던 장소이며, 아말렉족과 싸움을 벌인 곳이다. 이곳에는 현재 모세 기념 예배당과 여자 수도원 하나가 보존되어 있다. 아랍화 이전까지 이곳은 기독 신앙의 중심이었던 지역이다.

※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출 17:1)

※ 때에 아말렉이 이르러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출 17:8)

※ 그들이 르비딤을 떠나 시내 광야에 이르러 그 광야에 장막을 치되 산 앞에 장막을 치니라

(출19:2)

※ 알루스에서 발행하여 르비딤에 진쳤는데 거기는 백성의 마실 물이 없었더라 르비딤에서 발행하여 시내 광야에 진쳣고 (민 33:14~15)

 

시내광야

시내광야는 시내산 동쪽에 있는 에르 라하 (er Raha) 평원 지역으로 해발고도 800m 로서 현재 성 캐더린 수도원이 자리잡고 있다.

이 지역의 북서쪽에 자리하고 있는 산봉우리가 바로 시내산의 한 줄기이다. 시내광야 주변의 지형은 시나이 반도에서 가장 높은 지대이다.

모세산 이라고도 불리는 시내산 (2,285m), 캐더린산(2,642m), 세발산, 세일산 등으로 해발 2000 m 가 넘는 산들이 즐비하지만 어느 산이건 하나 같이 흙이 한줌없는 돌산들뿐이다.

이들 산악과 평야는 화강암, 편마암, 섬록암이 그 지층을 형성하고 있다. 모세의 출애굽 사건과 연관된 성산 (The Holy Mountain)인 호렙산 정상에는 기원 4세기 경에 세워졌던 조그만 교회 자리에 1934년에 다시 세운 성 삼위일체 교회가 있다.

시내산은 가데스에서 11일 길(신 1:2)이며, 신약에서는 사도행전 7장 30절, 38절, 갈라디아서 4장 24~25절 등 4번 언급되고 있다. 모세 일행은 출애굽 1년 3월 15일에 이곳에 도달한다. 이곳의 시내산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강림하시고, 이스라엘은 '산/ 앞에 장막을 치고 거주한다. 이 평원에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장기간 체류하였다.

※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올 때부터 제 삼월 곧 그때에 그들이 시내 광야에 이르니라 그들이 르비딤을 떠나 시내 광야에 이르러 그 광야에 장막을 치되 산 앞에 장막을 치니라 (출 19:1~2)

※ 여호와께서 시내 광야에서 (레 7:38)

※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후 제 이 년 이월 일일에 여호와께서 시내 광야 회막에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민 1:1)

※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그가 시내 광야에서 그들을 계수하였더라 (민 1:19)

 

바란광야

성 캐더린 수도원에서 동쪽으로 펼쳐지는 와디 마라(Wadi Mara) 계곡을 따라 나가면 아인 후드라 (Ain Hudra)라고 불리는 바란 광야에 이른다. 바란광야의 뜻은 '굴이 많은 땅'이라는 것으로서 이 지역은 노년기의 산악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온갖 색깔을 띠고 있는 산들이 연이어 있으며 산의 골격이 다 돌출된 모습들은 파충류의 모습을 연상하게 만들기도 한다. 평균 해발 600~750 m 정도의 석회암 산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크고 두려운 광야' (신 1:19)로 일컬어진 이유를 알 수 있다.

성경에서는 '미디안과 애굽 사이에 있던 땅'(신 1:1) 으로 언급되고 있다. 하갈과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의 집에서 쫗겨나 살았던 지역 (창 21:21)이며,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 과정 중 정탐꾼을 처음 보냈던 (가데스 : 민 13:3,26) 곳이며, 38년 이상의 긴 시간을 보냈던 장소이기도 하다.

또한 사무엘이 죽은 뒤에 다윗이 사울을 피해 숨어들었던 지역 (삼상 25:1)이기도 하다. 민수기 33장 2절, 하박국 3장 3절의 바란 산은 아카바만 서쪽 해안에 있는 바란 광야의 한 산으로 여겨진다.

이곳을 통과하여 시나이 반도 동쪽 해안인 아카바 만을 향해 계속 내려가서, 아카바 만의 누에바에서 해안을 따라 북으로 75 Km 를 가면 이스라엘과의 국경인 타바에 도착하게 된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