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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陽人문화유적❀

▣현곡(玄谷) 조위한(趙緯韓):1567년(명종 22)~1649년(인조 27), 본관:한양, 호:현곡(玄谷), 조선후기의 문신으로 동부승지·직제학·공조참판·자헌대부·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등을 역임. '최척전(..

by 晛溪亭 斗井軒 陽溪 2017.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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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 파주시 문산읍 장산리 산 75-23

※구글지도상 빨간표시 위치가 유택이 있는 곳입니다. 파주시 58번 시내버스로 이동후 정산2리 마을회관(신곡)에서 하차, 5~10분 정도 거리

※자가용으로 통일로 마루머리(마정교차로) 삼거리 두 번째 건널목 앞의 오른쪽의 동북쪽 14시방향 마정2교 다리를 타고 논둑길을 지나 장산입구에서 오른쪽-왼쪽 우회전하면서 장산2리(신속촌) 마을회관(시내버스058번정류장)까지 가서 동쪽(15시방향)으로 30초에 로드뷰 끝에서 주차하고 산언덕에 유택이 보입니다. 밭을 지나 유택언덕으로 오르면 됩니다.

※아래는 다음지도(카카오맵)상 로드뷰 사진입니다.

 

빨간표시위치가 유택이 있는 곳입니다. 파주시 58번 시내버스정류장으로 이동후 1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함.

▣현곡(玄谷) 조위한(趙緯韓):1567년(명종 22)~1649년(인조 27), 본관:한양, 호:현곡(玄谷), 조선후기의 문신으로 동부승지·직제학·공조참판·자헌대부·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등을 역임. '최척전(崔陟傳)'(1621년에 지은 한문소설), 『현곡집(玄谷集)』, ▣

 

玄谷集卷之一 / 辭 二首중에서.....

次歸去來辭 : 현곡 조위한 [玄谷 趙緯韓]

歸去來兮。世不我知可以歸。自古不遇者非一。吾何爲乎傷悲。仰孤雲之高標。邈淸風之難追。瞻頭流之幽邃。絶人間之是非。催潘岳之秋興。拂張翰之征衣。涉漢水之浩溔。辭終南之翠微。浩然而歸。策馬南奔。

朝發京華。夕至衡門。玉堂金馬。匪我思存。可以供老。樂我瓢尊。念誰昔之嬰禍。羌魄悸而汗顏。食同魚而滅耳。豈人心之所安。

✱고향으로 돌아가세,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으니, 돌아가도 되느니라. 예로부터 때를 만나지 못한 사람이

하나가 아니니라 내가 어찌하여 슬프기만 한가. 외로운 구름의 높은 기개

우러르며, 맑은 바람이 따르기 어렵게 아득히 먼

두류산(頭流山)의 그윽하고 깊숙한 곳을 우러러 보며, 인간 세상의 시비를 단절하니,

진나라 반랑(潘郞) 같이 반백이 되었고,장한처럼 나그네 옷 떨쳐입고,

끝없이 넓게 펼친 한강을 건너가며, 한양 남산의 푸름을 말하노라.

호탕한 마음으로 즐거이 돌아가네. 채찍질에 말 달려 남쪽으로 바삐 향하니

朝發京華。夕至衡門。玉堂金馬。非我思存。可以供老。樂我瓢尊。念誰昔之嬰禍。羌魄悸而汗顏。食同魚而滅耳。豈人心之所安。<次歸去來辭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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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서울을 출발하여 저녁에 거처에 도착했다.

홍문관 규장각이야 날 그리워 않겠지만

어른들을 봉양할 만하고 나를 즐겁게 했던 술잔이었다.

닥쳤던 옛 불행을 생각하자니

혼백이 두려워 땀낼 모습이었지만

같은 자리를 그저 먹어치울 뿐이었다.

어찌 사람들 마음이 편안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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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註

“같은 자리를 먹어치울 뿐이었다.”: 치열했던 자리다툼을 은유합니다.

 

饕薄祿而營生。縱軀命之所關。較得失於平生。盍遐擧而大觀。矧年老而多病。可卷懷而求還。世雖棄乎君平。道卽存於蜺桓。歸去來兮。聊卒歲而優游。臥一壑之煙霞。竟何慕而何求。當粱肉於晩食。替榮華於無憂。古人先我而實獲。欽往迹而爲疇。顏闔鑿坏。管寧浮舟。或潛身於滄海。或絶響於林丘。雖出處之異路。蓋明哲之同流。顧余志之異是。但有意於歸休。已矣乎。人生富貴在何時。歲月如流不可留。吁嗟乎。舍此將安之。唐虞不復見。巢,許非所期。甘終身而倘佯。趁春耕而夏耔。遡長風而放歌。迎素月而哦詩。旣得所而定居。肯從詹尹決所疑。

 

[贈三休趙敎官休]

聞君携小弟。來駐廣陵庄。

感舊身難去。徒然泣數行。

막내 동생 손잡고 온 소식 들었고,

광릉의 별장지에 와서 머무다.

옛 느낌에 이 몸은 가기 어려워,

부질없이 두어 줄의 눈물 흘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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