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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陽人문화유적❀

韓國의 傳統建築美 - 泉谷書堂- 茶玄 玄永助 / 建築家, 서울環境計劃硏究所 所長, 理學博士: 風水的 景觀美- 陽溪艸廬

by 晛溪亭 斗井軒 陽溪 2022. 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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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의 傳統建築美

泉谷書堂 茶玄 玄永助 / 建築家, 서울環境計劃硏究所 所長, 理學博士
風水的 景觀美- 陽溪艸廬

이곳은 경상북도 예천군 감천면 돈산리 라는 산골마을로서 평온한 지세이다. 이 지역은 경북 북부 유교문화권에 속해 있는 도시로서 철저하게 음양오행과 풍수설에 의하여 마을의 지리적 특성에 맞추어 집터를 정하고 집을 지었다.

 

그 대표적 사례로 돈산리(255번지)에 자리한 조창섭씨 댁이다. 이 댁은 공간으로 대문채와 안채 그리고 사랑채가 있고 교육공간인 서당이 있다. 그 중에 안채와 사랑채는 한일(一)자형으로 하나의 건축물로 되어 있고 사랑부분에 양계초려(陽溪艸廬)라는 현판이 적혀 있다. 즉 ‘양계초려’는 이 댁의 살림 공간(住生活 空間)으로 안채와 사랑채가 일자형(전면 10칸, 측면 2칸)으로 동일 공간에 있으면서 남쪽을 향해 모두 열려져 있다. 또한 장수지역(예천군)으로 알려진 이곳은 양계천이 흐르고 산수가 수려하다.

 

이 댁은 종가로서 천곡서당(泉谷書堂)이 있고 뜰에는 배, 밤(300여년). 회양목(200여년) 과 탱자나무와 함께 팔우헌(八友軒: 山, 水, 風, 月, 松, 竹, 梅, 菊)이 객사(客舍)로 이용되고 있다. 팔우헌 동쪽에는 지석묘(2기)가 있다.

 

그 중 주생활 공간은 주마산(走馬山 : 해발 508미터)이 감싸고 있는 중앙에 있으며 이 산은 마을의 서측에 위치하여 겨울철 북서풍을 막아준다. 이 때문인지 양계초려의 뒤뜰에 대나무가 자라고 있으며 마을환경 풍수지리사상에 준해서 입지하고 있다.

공간배치 개인적인 공간과 공적인 공간이 한곳에 배치되어 있다.

어지간한 추위에도 지상부가 동사하는 일은 없다고 한다. 그리고 완만한 산세와 삶의 공간이 조화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이곳을 풍수지리적인 관점에서도 모순된 풍수적 설명을 하고 있다. 주산은 주마형(走馬形)이고 ‘양계초려’는 와우형(臥牛形)에 위치하고 있으며 물형(物形)으로 소와 말에 비유하고 있다.
마을 앞을 가로막는 나지막한 능선은 동물의 꼬리에 해당하는 것처럼 보이며 주마산의 주능선은 등, 주능선의 북측에 있는 작은 능선은 앞발 내지는 머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양계초려’가 위치한 곳은 결국 평화롭게 누운 소의 배가 되는 셈이니 길지(吉地)임에 틀림없다.
소나 말은 농경사회에서 가족만큼이나 소중한 존재였음에 틀림없으며 생산활동의 원동력이라는 점은 물론 평화와 태평, 또한 풍족함(혹은 자손의 번성)과도 무관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주마산이라는 이름에서 보듯이, 달리는 말이란 씩씩한 기상과 번영을 나타내는 것이며 말과 소에 비유한 풍수적 관점은 돈산리의 지형적 특성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 하나의 특징은 골짜기의 저지대는 겨울에도 물이 흥건히 고여있는 논이며 주마산 주 능선의 동측과 마을전면의 나지막한 능선은 모두 경사가 지극히 완만하여 밭으로 이용되고 있어 풍부한 농토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경관적으로 보더라도 겨울철 석양은 주마산의 가장 높은 부분인 주능선의 남측, 나지막한 산 위를 떨어지며 마을 남측의 완만한 능선은 시각적으로도 안정감과 동시에 답답하지 않은 조망을 제공하고 있다.

(현영조, 2002.12 전통가옥관광자원화 방안연구, 한국관광공사)

 

三心의 空間
이 댁은 이 지역의 자연 생태계를 인간의 공간과 접목하는 과정에서 자연의 혜택을 극대화 한다. 풍수적으로 비보(裨補)하는 지혜는 허적공간(虛的空間)과 실적공간(實的空間)을 상생(相生)시키기 위하여 자연과 인간의 공생공간(共生空間)의 창출은 이 가옥의 건축과 조경을 동시에 경험하게 하는데 가치가 충분하다.
따라서 필자는 이 댁의 생활철학이 담겨져 있는 ‘陽溪艸廬’와 ‘八友軒’ 그리고 ‘泉谷書堂’의 공간적 특징으로 ‘陽溪艸廬’에서 안빈낙도의 마음(心)과 ‘팔우헌’에서 객(客)들과 고상한풍류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마음(心)으로 그리고 ‘천곡서당’에서는 사람을 사람답게 키우고자하는 마음(心)을 읽었기 때문에 이 댁 공간의 철학을 ‘三心空間’의 구성체라고 감히 명명하게 된 것이다. 특히 삼심공간의 으뜸은 천곡서당(泉谷書堂)이라고 할 수 있다.

장독대 장독의 관리모습에서 이 댁의 살림규모와 그 지혜를 느낄 수 있다.

팔우헌 공적인 공간으로 객사의 기능을 하고 있다.

편액(양계초려陽溪艸廬)
안채와 사랑채가 일직선상에 있고 전면이 툇마루로 연결되어 있다.
지금은 지붕재료가 스레트로 도어있지만 이집의 원형은 초가지붕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천곡서당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시설이다.-전면 3칸,측면 2칸의 일자형 평면으로 팔작기와지붕이다.

泉谷書堂-風穴의 美
천곡서당은 산곡동(山谷洞)수구(水口) 독서동(讀書洞)에 1754년경에 팔우헌(八友軒) 조보양(趙普陽) 선생이 창건하여 원근학동(遠近學童)을 수학하고 향토사림(鄕土士林) 들의 강학(講學)의 장소이었는데, 1868년 산곡동 강당에 천곡서원을 창설하기 위해 이건 하였으나 1871년 조령(朝令: 毁撤令)에 의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고 1903년에 현지로 이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서당에는 팔우헌 문집(八友軒 文集)과 학동에게 수업하던 박동록(泊董錄)외의 고서 천 여권이 있다고 전해진다.
천곡서당은 대문채(솟을 대문)에 들어서면 우측(원래는 대문과 마주치는 것으로 추측)에 천곡서당이 위치하고 있다. 이것은 남향한 전면3칸에 일자형 누각 건축으로 중앙에 마루를 만들고 양쪽에 온돌방이 있고 툇마루가 전면 세 칸을 차지하고 있다. 어린이들의 교육공간으로 소규모이긴 하지만 이 건축물이 갖는 의미는 깊다.
인간은 자연환경에 지배를 받는다. 이러한 의미에서 주마산이라고 하는 현(玄)은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기상을 주면서 호연지기를 배울 수 있고 산 밑에 펼쳐진 마을은 배가 떠나가는 듯한 행주형(行舟形)이라고 하는 것은 진취적인 심성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그 속에 자리한 ‘양계초려’와 ‘팔우헌’ 그리고 ‘천곡서당’의 공간들은 모두 와우형(臥牛形)지형의 풍수설에 해당한다고 하지만 그 의미는 물형에 의한 비교를 풍수에서는 물형설(物形說)에 지나지 않는다.

 

용마루 용마루의 끝부분이 하늘을 향해 치솟고 있다.-용마루를 힘있게 마무리 하는 망새(망와)와 내림마루에서 귀마루를 향하여 흐르고, 추녀 위에서 또 다시 망와가 힘있게 치솟는다.


그리고 풍수적으로 와우형(臥牛形)의 양택지는 좋은 터라고 한다. 즉 길지(吉地)속에 ‘천곡서당’이 있는 셈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천곡서당’은 마을의 학동들에게 꿈을 키워주고 수신(修身)할 수 있는 교육공간으로 터를 잡은 것이다. 그 터 잡기(토지 이용)의 지혜를 풍수설과 역학을 통해서 얻은 셈이다. 그 만큼 이 지역이 유교문화권으로서 유교적 풍수지리사상에 의존하여 입지와 토지이용 그리고 조경(식재)을 조화로 건축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대표적 사례가 천곡서당의 건축적 구조와 공간적 구획이 교육공간이면서 사랑채의 기능을 겸하고 있다.

특히 동서로 길게 자리잡은 대지 위에는 기존의 대문채가 헐려 없어진 채로 새로운 대문이 그리고 풍수적으로 와우형(臥牛形)의 양택지는 좋은 터라고 한다. 즉 길지(吉地)속에 ‘천곡서당’이 있는 셈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천곡서당’은 마을의 학동들에게 꿈을 키워주고 수신(修身)할 수 있는 교육공간으로 터를 잡은 것이다. 그 터 잡기(토지 이용)의 지혜를 풍수설과 역학을 통해서 얻은 셈이다. 그 만큼 이 지역이 유교문화권으로서 유교적 풍수지리사상에 의존하여 입지와 토지이용 그리고 조경(식재)을 조화로 건축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대표적 사례가 천곡서당의 건축적 구조와 공간적 구획이 교육공간이면서 사랑채의 기능을 겸하고 있다.
특히 동서로 길게 자리잡은 대지 위에는 기존의 대문채가 헐려 없어진 채로 새로운 대문이 전통식으로 세워지기는 하였지만 당초의 대문의 위치에는 폐허가 된 담장의 잔해만 남아있을 뿐이다. 그러나 교육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서당은 작은 누각의 형태로 철학적 교육공간을 느끼게 한다. 뿐만 아니라 기와 잇기와 난간의 조형성은 천곡서당의 특징이기도 하다.

배치도 도면제작 : 현영조,강신용,신영일

 난간의 풍혈의 조형이 다양하다.

 

생명력을 부여하고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관리상태와 노후된 부분을 보수하는 과정에서 원형의 목혈이 아닌 평널을 끼워넣어 풍혈의 조형미를 반감시키고 있다. 그렇지만 천곡서당은 작고 단순한 기능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 건축물이 주는 이미지(Image)는 18세기 중엽에 팔우헌(八友軒)선생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전통적 건축물로서 공적인 공간이다.뿐만 아니라 팔우헌공(公)은 자연과 더불어 맑고 깨끗하게 살아가는 선비의 기개와 넉넉한 포용력으로 너그럽고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지조를 지키면서 유학자다운 모습을 후손들에게 남겨주었고, 그 생활철학이 고스란히 담겨져있는 철학적 건축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자손들에는 ‘孝悌는 本이오 文藝는 末’이라고 강조하여사람됨이 먼저임을 깨우치도록 교훈하고 있다. 즉 인성교육의 필요성과 인간의 도덕성 함양에 대하여는 누구나 절감하고 있지만 경제, 정치, 사회, 문화가 아무리 발전된다 해도 결국은 사람이 하는 것이므로 사람이 바르지 않으면 모든 것은 왜곡되고 혼탁해질 수 밖에 없다는 현실에서 다시 한번 되새김해 볼 명구라고 생각된다.

 

팔우헌공(八友軒公)이 건립한 천곡서당의 조형적 의미가 더 하는 것도 이러한 인간적 심성이 우러나오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이 서당의 난간에 뚫어진 풍혈의 다양한 형태에서 천곡서당의 철학적 의미가 학문과 예술이 접목되면서 가정교육이 쇠퇴해지고 있는 오늘날 전통문화의 가치를 깨닫게 한다.


이와같이 예천지방 특유의 건축공간이 본채(안채와 사랑채)와 팔우헌 그리고 천곡서당에서 복합적 기능미를 창출하고 있다. 즉 그것은 사적인 공간과 공적인 공간의 어울림으로 인간적 삶의 공간의 진수를 보여주면서 ‘孝悌的空間’이 곧 ‘文藝的空間’임을 암시한다.

풍혈의 조형미 음양오행과 12지간의 의미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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