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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간사] 필사본 92장,
세월이 내려앉은 그 낱장들을 넘기자 조선시대 유림사회의 풍경이 되살아났습니다. 한국국학진흥원에서는 그것을 한 그릇의 비빔밥처럼 색색별로 정성스럽게 담아 내놓으려고 합니다. 1년 여간 꼼꼼하게 풀고 다 듬었는데 야물게 갈무리되었는지, 떨리는 마음 가눌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도 ‘문헌기록과 발굴’이라는 새로운 총서를 기획, 간행하게 되어 무척 기쁘 게 생각합니다. 이번에 선보이는 첫 번째 시리즈는 골동록입니다. 골동은 오래되었거나 희귀한 옛날 예술품, 또는 자질구레한 것이 한데 섞인 것을 말합니다. 오방 색을 담은 비빔밥을 그래서 골동반이라고도 합니다. 이 책은 18세기 한 영 남 남인이 유림들의 잡다한 이야기를 기록한 생동감 넘치는 필기류입니다. 필기류는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생활의식을 비교적 자유롭게 써 내려간 문학 양식으로,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에 들어와서 한층 활발하게 창작되었습니다. 골동록은 총 232편으로, 인물의 인품이나 행신에 관한 내용 61편, 시화 에 관련된 내용 38편, 민담 형식의 담론 32편 등 선현의 지혜가 풍부하게 아로새겨진 이야기입니다. 이 책은 밤새워 읽으면서 자기도 모르게 박수를 치거나 웃음을 터뜨리게 하고, 한편으론 한숨을 내쉬게도 합니다. 그러하니 읽는 재미가 참으로 다양하여 함께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 듭니다. 끝으로 이 책이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귀중 자료를 기탁해 주신 ‘한양조 씨 팔우헌종택’ 어른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모쪼록 이 책이 우리 국학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유도할 수 있는 조그만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 다.
2011년 12월 일
한국국학진흥원장
해제 1 골동록(汨蕫錄)은 92쪽에 걸쳐 수록된 232편의 한문 단편 모음집 성격 의 필사본이다. 반행 반초로 되어 있으며,
1.ㆍ2쪽과 91ㆍ92쪽은 마모가 심 하여 알아볼 수 없는 글자가 상당수 있다. 애초에 그것은 세월의 때가 켜켜 이묻은 한지 묶음으로 종택의 깊숙한 서궤에서 단잠을 자고 있었을 터이다. 그런데, 팔우헌 종택에서 한국국학진흥원에 자료를 기탁함으로 인한여 그 것이 어느 날 우리 앞에 불현 듯 다가왔다. 우리는 그것을 생선가시를 발려 내듯이 조금씩 해체하여 복원했다. 탈초와 번역이란 그런 것이다. 그러자 그 속에서 무수한 인영들이 되살아나서, 조선후기 안동문화권의 유림사회가 재 현되었다. 우리는 그 한지 묶음에서 새로운 생명의 자각과 고동을 느끼면서 서서히 녹아들었다.
2. 저자 조보양(趙普陽, 1709∼1788)은 18세기를 살다 간 안동문화권의 선 비이다. 그는 조선시대 안동 도호부의 속현이었던 감천현(지금의 예천군 감 천면) 돈산 산골마을 사람이며, 외가인 풍산의 우렁골에서 출생했다. 아우 의양(宜陽)이 쓴 「중형팔우헌공행장(仲兄八友軒公行狀)」에 의하면, 그의 성 은 조씨(趙氏)로 한양인(漢陽人)이며, 자는 인경(仁卿), 호는 팔우헌(八友軒) 이다. 조부 봉징(鳳徵)은 현령으로 갈암의 문하에 종유했고, 부친은 정헌대 부 동지중추부사 원익(元益)이며, 모친은 정부인 예안이씨(禮安李氏)였다. 어려서 부친의 명으로 고산 이유장의 문인인 소은(小隱) 이경익(李景翼)에게 서 수학했고, 난졸재 이산두와 청대 권상일에게서도 가르침을 받았다. 1747 년(영조23)에 생원 진사시에 모두 통과하고, 육십 대 중반인 1773년(영조 49)에 조카 석회(錫晦)와 나란히 문과에 급제했다. 전적(典籍)과 감찰(監察)을 거쳐 예조좌랑이 되었는데, 당시 권세가인 화 완옹주의 양자 정후겸(鄭厚謙, 1749∼1776)이 예조참판으로 오면서 자신의 임관례에 찾지 않았다 하여 저자의 종을 대신 매질했다. 저자는 “이 사람의 세도가 하늘을 사를 듯하여 이처럼 선비를 업신여긴다. 군자가 기미를 알아 차려야 할 때이다. 흰머리의 낭관이 젖내 나는 아이에게 욕을 당하는구나.” 라고 하며 감연히 벼슬을 던지고 귀향한다. 이때부터 향리에 살면서 양친 봉양을 사업으로 삼아 늙고 병든 부모의 배설물을 직접 처리하고 모친의 병 환에 단지(斷指)를 하는 등, 효행을 몸으로 실천하여 보인다. 그리고 산림에 서 유유자적하며 산(山)ㆍ수(水)ㆍ풍(風)ㆍ월(月)ㆍ송(松)ㆍ죽(竹)ㆍ매(梅)ㆍ국 (菊)의 여덟 친구와 벗한다 하여 ‘팔우헌’이라 자호했다. 만년에 정조 임금이 그의 전력을 듣고 벼슬을 내렸으나 즉시 물러났으며, 죽는 해인 정조 무신년 (1788)에 첨지중추부사와 오위장의 벼슬이 내린다.
3. 골동록은 필기류(筆記類) 문학이다. 필기는 잡록(雜錄)ㆍ찰기(札記)ㆍ일 록(日錄)ㆍ필담(筆談)ㆍ수필(隨筆)ㆍ만록(漫錄) 등의 이름으로 불리어지던 기록방식이며, 견문을 잡기한 기록류의 범칭이다. 필기는 문인학자의 서재에 서 형성된 것일 뿐이 아니라 사대부의 생활의식을 그 내용으로 삼고 있다. 고려시대의 파한집ㆍ보한집ㆍ역옹패설 등에서 시작하여 조선에 들어 와서는 더욱 활발히 창작된다. 골동록의 내용을 분류해보면 저자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짐작할 수가 있 다. 전체 232편의 글들 중에서 ‘사람의 인품이나 행신’에 관한 것이 61편으 로 가장 많다. 그가 평한 인물들은 대개 산림처사이거나 종, 여자, 한미한 관인 등이 많다. 그리고 윤선도나 조사기처럼 같은 남인일지라도 지나친 바 가 있으면 비판을 가하고, 조조나 정인홍, 이이첨 같이 부정적으로 알려진 사람도 장점이 있으면 인정을 했다. 평가의 기준은 대개 유가적 도덕성이나, 인간적 진솔함과 정직성에 주안점을 두었다. 다음으로 출현 빈도가 많은 것 은 38편의 ‘시에 관한 내용’이며, 일종의 시화(詩話) 형식을 띤다. 저자가 스 스로 시로써 진사가 되었다고 밝혔듯이 자신의 특장도 시에 있다고 여긴 듯 하며, 당시 조선 선비에게 있어서 시는 생활의 일부분임을 잘 드러내어 준 다. 다음으로는 ‘신기하고 이상한 얘기’가 32편으로 세 번째 순위를 점하고 있다. 이는 민담의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점쟁이의 점술이나 주역 점, 풍수사상, 꿈의 해몽, 도가적 별세계 등의 내용들을 담고 있다. 네 번째 순위로 ‘역사에 대한 관심’이 25편이다. 저자는 역사에 대한 아쉬움이 많다. 병자호란과 북벌에 대한 아쉬움, 대 일본 저자세 외교에 대한 아쉬움, 유비 의 촉한(蜀漢)에 대한 아쉬움 등이 그렇다. 그리고 조지국(條枝國) 등 서역 (西域)의 ‘역사에 대한 관심’도 상당부분이 있다. 다음 순위는 15편의 ‘개인 의 우월한 능력’에 대한 부분이다. 이는 의술이나 점술, 글씨 혹은 암기력 문장력 등이 탁월한 바를 모아 적었다. 다음 순서는 10회의 빈도를 보이는 ‘과거제도’에 대한 글이다. 저자는 조선이 개국한 이래 점차 문란해져가는 명경과와, 뚜렷한 명분 없이 남설 되는 증광시 등에 대한 깊은 우려를 드러 내고 있다. ‘골계’ 9, ‘당론’ 8, ‘학문’ 7, ‘용맹’ 7, ‘풍속’ 6, ‘악행’ 3 등의 글들이 하위순위로 나타나고 있다. 이같은 저자의 지적 관심과 편력은 가히 조선후기 안동문화권 사림의 보편적 의식의 전형으로 이해 할 수 있겠다.
4. 또한 골동록은 앞에서 골계문학이라 했듯이 상당히 해학적인 면이 있 다. 경우에 따라 직접적으로 웃음을 촉발하는 글들도 상당수 있지만, 대개의 글은 마무리에서 여운이 감도는 은은한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그런 점에서 이 글은 서거정의 태평한화골계전(太平閑話滑稽傳)과 상당히 유사하다. 둘 다 지식층의 소화(笑話)이며, 그래서 많은 전고(典故)가 포함되어 있고, 시나 시구를 소재로 한 이야기가 많고, 또한 항상 일정한 품위를 유지하려 는 유자적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물론 차이도 있다. 서거정은 조선 전기 관 각문인의 대표라서 동원된 소재도 서울의 관료 사회 이야기가 많다. 하지만 저자의 경우는 비록 환로에 나서기는 했으나 기본적으로는 영남 출신의 처 사적 문인으로 지역과 당색의 정서를 상당수 반영하고 있다. 저자는 사마천의 사기(史記) 「골계전(滑稽傳)」의 서문을 인용하면서 “천지가 넓고 넓으니 어찌 크지 않겠는가? 완곡한 말로 정곡을 찌르면, 또 한 세상의 다툼을 해결할 수가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완곡한 말로 찌른다 는 것은 골계의 여러 유형 중 ‘풍자(Satire)’의 개념에 속한다. 여기에서 골 계의 의미는 ‘뼈 있는 농담’ 정도의 뜻으로 파악될 수 있다. 「골계전」에 등 장하는 인물들은 비록 비천한 신분에 속한 사람들이지만 군주에게 직언을 서슴지 않는 충신의 이미지와 유사하다. 저자는 「골계전(滑稽傳)」의 골계 개 념을 원용한다. 그래서 160번째 글에서 ‘광대 막남(莫男)’, ‘인조(仁祖) 때의 해학을 잘 하던 무명씨’, ‘안기역(安奇驛) 역졸 조문수(趙文秀)’ 등 세 사람 의 해학을 소개하면서 “익살꾼 세 사람 중에 유독 막남만이 옛 현인의 풍모 를 갖고 있고, 나머지 두 사람은 웃음을 후리는 것일 뿐이다.”라고 하여 자 신의 글의 지향점을 내보였다. 의리(義理)의 소재를 아는 자의 풍자와 단순 한 웃음꺼리를 명확히 구분지어 말한 것이다.
5. 본문에 따르면 77번째 글에서 83번째 글까지는 저자의 아우 조의양(趙宜陽, 1719~1807)이 기록했다. 조의양의 인적사항은 본문 중에 포함되어 있 으므로 따로 언급하지 않는다. 이 책은 한마디로 영남출신의 남인학자가 기 록한 필기류 자료라는 점에서 우선 주목된다. 오늘날 조선시대 한문 소품체 의 자료는 매우 드물게 전하는데 골동록은 또한 유일본이라는 점에서 그 가 치가 더욱 높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18세기 영남 문인들의 문예적 취향 을 이해함은 물론이고 당대의 생활사 복원의 가능성을 전망할 수 있는 것이 다.
2011년 12월 초하루 삼우재에서.....
역자를 대표하여 김 용 주
조선후기 필기집에 수록된 사회적 약자에 대한 기록과 서술 방식
- 골동록(汨蕫錄)을 중심으로 - 한의숭* 23)
목차
1. 머리말
2.골동록(汨蕫錄)에 포착된 사회적 약자의 형상
3.골동록(汨蕫錄)에 활용된 서술 방식의 양상
4. 조선후기 필기집에 수록된 인물 기록과 다양성의 의미
5. 맺음말
◾국문초록
이 논문은 고전산문 자료 가운데 하나인 필기집에 수록된 사회적 약자 의 형상과 서술 방식을 주목하고, 그것의 활용 방향에 대해 고찰한 것이다. 본고에서 주목한 텍스트는 18세기 영남 남인 조보양이 편찬한 필기집 골동록(汨蕫錄)이다. 골동록(汨蕫錄)은 조선시대에 편찬된 여타 필기집과 같이 시화, 일 화, 사화, 논변 등과 관련된 단형서사가 주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골동록(汨蕫錄)의 경우 맹인·여성·승려·점술가 등 조선사회에서 사회적 약자에 해당 되는 인물 일화가 다수 수록되어 있어 주목을 끈다. 그들은 조선사회에서 주목받지 못한 이들이며 역사적 존재로 잘 거론되지 않는 일반 기층민이
* 전남대학교 인문학연구원 부교수 32 가족과 커뮤니티 3집
었다. 하지만 엄연히 생동하는 존재로 조선 사회의 구성원이기도 했다. 조보양의 시선에 포착된 사회적 약자이긴 했지만, 그들은 당대 조선사회 를 구성한 다양한 일원 가운데 하나로 생동감 있는 존재로 호명되었다는 게 중요하다. 골동록(汨蕫錄)에 포착된 사회적 약자는 기본적으로 중세 이데올 로기의 구도 안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억압적 구조 속에서 인정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거나 배려와 포용을 실천하는 존재로 형상화 되었 다. 그리고 이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인물전의 서술방식을 차용하 여 존재감을 부각시키고, ‘이야기하기’ 방식을 통해 생동감 있는 존재로 묘사되고, 포착되었다. 골동록(汨蕫錄)에 기록된 사회적 약자의 인물 형상은 동 시대 필기집에 비해 상대적으로 다양하게 등장하는 편이다. 그리고 다양 한 인물 형상을 주목하고 기록한 것은 최소한 조선 사회의 구성원으로 존재를 일정부분 인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이 사회적 약자를 당당한 역사의 주체로 전면화 시킨 것이라 하긴 어렵다. 하지만 사회적 약자를 응시하고 기록하여 존재와 역동을 포착하고자 한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이러한 고전산문 자료에 수렴된 사회적 약자의 존재는 전근대 사회 역시 다양한 사람들이 공존한 사회였음을 증명하는 것으로 주목된 다. 그리고 이러한 자료는 혐오와 배제, 차별을 운운하는 우리 사회에 다 양성의 의미를 전근대사회의 문헌 기록을 통해 재조명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따라서 고전산문 텍스트의 활용은 해당 자료를 바라보는 데 있어 서 전근대적이라는 일방적이고 단선적인 시각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부터 출발할 필요가 있다.
주제어: 골동록(汨蕫錄), 18세기, 영남 남인, 사회적 약자, 형상,
서술 방식, 필기집, 고전산문
1. 머리말
본고는 조선 후기 필기류 자료에 수록된 일화 가운데 사회적 약자에 대한 기록과 서술 방식을 주목한 것이다. 필기류 자료에 대해서는 그동 조선후기 필기집에 수록된 사회적 약자에 대한 기록과 서술 방식 33 안 장르적 성격과 관련하여 논의가 있었고, 연구 성과 또한 제출되었다. 일반적으로 필기는 개인과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다수 수록하고 있 다. 특히 개인과 일상에 대한 관심은 비교적 근래에 도래하기 시작한 것으로, 거시사와 거대담론의 틈바구니 속에서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 었던 미시적 생활사가 소환되면서 담론의 영역 안으로 틈입된 것임을 의미한다. 이들은 이전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논의가 새롭게 발견된 것 이 아니라, 잊혀 지거나 밀려나 있었던 것을 새롭게 길어 올린 것에 해 당된다. 개인을 둘러싼 생활 주변의 일상적인 것, 평범한 것을 재발견하 게 된 것에 다름 아니다. 문학사에서 일상1)의 발견은 국가나 사회와 같은 공동체가 아닌 개인 의 존재에 대해서 주목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개인을 소환할 때, 사적이고 내밀한 존재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표징하는 대표적인 장르로 ‘일기’를 떠올리게 된다.2) 이를 통해 개인의 의미를 일정부분 짐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때 부상 하는 개인이란 공동체 사회에서 주체로 등장하여 제 목소리를 내기 시 작하는 존재를 의미하는 것으로, 전근대사회에서는 계급의 문제와 일 정부분 연관된다. 그렇다면 동아시아 전근대사회에서 과연 개인이란 존재는 개념화 될 수 있느냐에 대한 회의가 들게 된다. 주지하듯이 전근대시대는 지배계 급과 피지배계급이 나눠져 있었고, 소수의 지배계급이 다수의 피지배 계급을 통치했기 때문에 지배계급의 존재만 부각되었을 뿐이다. 이점
1) 고전문학 작품 속에 드러난 일상에 대해서는 신경남, 조선후기 애정소설의 생활사적 연구 , 가천대 박사학위논문, 2017 참조.
2) 근래들어 일기문학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이는 곧 개인이 란 주체와 미시적 일상사에 대한 관심이 결합되어 나타난 현상으로 이해된다. 이에 최근 논의는 김미선, 호남지방 일기자료 연구의 현황과 과제 , 호남문화 연구58, 전남대 호남학연구원, 2015 ; 정우봉, 조선 후기의 일기문학, 소명, 2016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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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기록문자의 차원에서도 한자/한글의 이중체계 속에서 전범의 위치 를 공고히 차지하고 있었던 것은 지배계급의 언어인 한자였던 것에서 아울러 확인되는 사안이기도 하다. 때문에 한글로 대표되는 피지배계급의 언어는 오랜 기간 중심부를 차지하기 힘들었고, 이로 인해 역사의 전면으로 목소리를 잘 드러낼 수 도 없었으며, 실제적 힘도 부족했다. 다수의 피지배계급의 언어와 목소 리, 집단적 운동은 19세기에 이르러서야 맹아를 틔우기 시작하는 정도 였다. 그렇다면 한자로 기록된 문헌에서 피지배계급의 일상은 완전히 배제 되어 있었던 것인가를 생각해 보면, 실상은 그렇지 않음을 확인하게 된 다. 사대부로 대표되는 지배계급은 피지배계급의 삶에 대해 지속적으 로 관심을 기울여왔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애민시나 사회시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기록은 지배계급의 입장과 시선에서 바라본 것이 기에 피지배계급의 일상을 주체적 시각으로 문면에 고스란히 담은 것 이라 하긴 어렵다. 따라서 우리는 이른바 피지배계급에 속하는 다양한 사회적 약자의 형상을 각종 문헌 기록 속에서 조사, 정리할 필요가 있다. 그런 다음 그들의 삶을 포착하고 기록한 양상을 통해 당대의 시각 속에서 인간 형상의 다양성이 어떻게 주목되고, 소환되는지 분석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고전문학 분야에서 사회적 약자를 주목한 논의가 전혀 없었 던 것은 아니다. 이른바 병신(病身), 거지, 소수자 등에 관해 사회사적 맥락에서 살펴 본 것이 그것이다. 3) 이들은 사람에 대한 기록이라는 측면에서 공통점을
3) 이에 대해서는 박희병, 병신에의 시선 , 고전문학연구24, 한국고전문학회, 2003 ; 김준형, 패설집 나타난 소수자의 문학적 형상화 양상 , 어문학교육47, 한국어문교육학회, 2013 ; 조선후기 하층민의 삶과 이데올로기, <장풍운전> , 고소설연구33, 한국고소설학회, 2012 ; 조선후기 거지, 문학적 시선과 전승 , 한국어문학연구56, 한국어문학연구학회, 2011 참조.
조선후기 필기집에 수록된 사회적 약자에 대한 기록과 서술 방식 35
가지기도 하는데, 문학사에서 인간에 대해 기록한 대표한 장르는 바로 ‘전(傳)’이었다.4) 일찍이 전은 개인의 전기, 한 인간에 대한 사후 기록으 로 문학사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인물에 대한 특징을 집약한 일대기 로 한 인간을 파악하는 기초자료로 중요했다. 특히 조선후기에 들어서 는 자전(自傳)5)이나 자찬묘지명(自撰墓誌銘)6) 등 본인이 자신의 일대 기를 정리하여 기술한 자전류의 작품이 창작되는 것을 통해 ‘아(我)’라 는 주체에 대한 자각이 환기된 장르이기도 했다. 그러나 사대부를 위시 한 지배계급이 주된 입전의 대상이었다는 점에서 일면 한계가 노정되 기도 했다. 조선후기로 넘어오면서 조희룡(趙熙龍, 1789~1866)의 호산외기(壺 山外記), 유재건(劉在建, 1793~1880)의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 신 광현(申匡絢, 1813~1867)의 위항쇄문(委巷瑣聞), 장지연(張志淵, 1864~1921)의 일사유사(逸士遺事) 등 중인계층을 중심으로 편찬된 여항전기집의 출현을 통해 인물에 대한 기록은 특정 계급만의 전유물 에서 벗어나는 양상이 확인된다. 또한 개인의 문집 속에 수록된 열녀전, 유협전 등 다수의 전(傳) 작품을 통해 피지배계급의 존재가 부각되는 변화의 조짐 또한 일정부분 감지되기도 했다. 하지만 피지배계급의 다 양한 형상이 온전히 기록으로 수렴될 수는 없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소수에 해당되는 특정한 인물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렇다면 다양한 인 물 기록에 포섭되지 못한 다수의 피지배계급의 형상과 목소리는 다 사
4) 傳에 대한 관심은 전기 자료, 소설로의 경사, 장르적 특징 등 초기부터 다양하게 논의되어 왔다. 최근에는 논의가 많이 줄어든 상태이긴 하나, 개인 전기사료라 는 관점에서 새로운 작품들이 다수 발굴되고 있기 때문에 전이라는 산문 작품 전반에 대한 사적 흐름과 전변을 통시적으로 재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5) 自傳적 글쓰기에 대해서는 안득용, 16세기 후반~17세기 전반 自傳的 敍事의 창작 경향과 그 의미 , 韓國漢文學硏究51, 韓國漢文學會, 2013 ; 조선후기 자 서전의 특징적 局面과 그 의미 , 韓國漢文學硏究56, 韓國漢文學會, 2014 참조.
6) 자찬묘지명에 대해서는 안대회, 조선후기 自撰墓誌銘 연구 , 韓國漢文學硏 究31, 韓國漢文學會, 200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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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져 버린 것일까? 이 지점에서 주목되는 게 바로 필사본 형태나 문집 에 수록된 만록, 만필, 잡록, 기문록 등 이른바 잡록에 해당되 는 필기집이라 할 수 있다.7) 이들 필기집들은 일화, 시화, 사화, 변증 등의 다양한 기록들이 혼재 되어 있다. 물론 필기집을 편찬한 주체가 주로 사대부이기에 수록된 기 록의 중심 인물 또한 사대부와 그 주변이 핵심을 차지한다. 하지만 필기 집에 기록된 내용을 천천히 살펴보면 역사의 기록 어디에도 수렴되지 못한 다양한 사회적 약자들이 수렴되어 있는 게 확인된다. 물론 이러한 기록은 사대부들이 남긴 것이나 다양한 사회적 약자의 특징적 삶을 전 문을 동원하여 수렴하고자 하였다. 즉, 보고 들은 것을 옮기는 구전이 기록의 중요한 수단으로 활용되었고 이를 통해 자칫 사라져 버릴 뻔한 사회적 약자의 삶이 일정부분 전해질 수 있었다. 본고에서는 골동록(汨蕫錄)이란 텍스트를 통해 고전산문에 수렴된 사회적 약자의 형상과 서술 방식을 살펴보고, 그것의 활용 방향에 관해 논의해 보고자 한다.8) 특히 골동록(汨蕫錄)은 18세기 영남 남인에 의해 편찬된 필기 집으로 지역적 성격을 감안했을 때 상당히 이채로운 자료라 할 수 있다.
7) 필기에 대한 관심은 학계에서 진작에 있어왔으나, 사적으로 관통하는 맥락을 찾는 것에 있어서 수많은 난관에 봉착한 관계로 최근 들어서는 논의가 주춤한 상태다. 필기는 주로 하위 갈래인 일화, 시화, 논변, 사화, 패설 등에 대한 개별 논의가 중심 논의를 이룬다. 아울러 조선후기 야담과의 관련성을 중심으로 논 의가 많이 이루어졌다. 이에 대한 중요한 논의는 다음과 같다. 이래종, 鮮初 筆記의 展開 樣相에 관한 硏究 , 고려대 박사학위논문, 1997 ; 신상필, 筆記의 敍事化 樣相에 관한 硏究 , 성균관대 박사학위논문, 2004 ; 김준형, 한국패설문 학연구, 보고사, 2004. ; 이강옥, 일화의 형성 원리와 서술 미학, 보고사, 2014 참조.
8) 골동록은 18세기 영남 남인인 조보양에 의해 편찬된 필기집으로 한양조씨 팔우헌종택에 소장되어 있던 자료가 현재 한국국학진흥원으로 기탁된 것이다. 이 자료를 한국국학진흥원이 2011년에 18세기 한 영남 남인의 지적 관심과 기록-골동록(汨蕫錄)-으로 번역, 발간하였다. 본고는 이것을 주된 텍스트로 삼아 논 의를 진행하고자 한다.
조선후기 필기집에 수록된 사회적 약자에 대한 기록과 서술 방식
37 연번 화수 일화 내용 신분 1 41 약을 업으로 하는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지금 사대부들의 욕심이 과함을 비판 상민 2 45 의원 김응립의 청렴함 중인 3 46 영주 화기촌 노비 강이의 충성됨 노비
이 자료는 발굴, 소개된 뒤 번역작업도 이루어졌으며 간단한 논의가 나 오기도 하였으나,9) 아직까지 널리 알려진 자료라 하기는 어렵다. 본고 에서는 이러한 자료적 성격을 충분히 반영하면서 논의를 진행해 보고 자 한다.
2. 골동록(汨蕫錄)에 포착된 사회적 약자의 형상
골동록(汨蕫錄)을 살펴보면 전형적인 필기집의 성향을 띄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필기집의 경우 일화나 시화, 사화 등과 같이 사대부를 중심으 로 한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는 게 일반적이며, 골동록(汨蕫錄) 역시 이러한 성향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는다. 골동록(汨蕫錄)은 저자의 주거지인 18세기 영남 안동 지역을 중심으로 주변에 존재한 인물의 이야기가 기록되고, 당대 문학사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던 영남 남인이 다수 포착되어 있다. 이와 함께 저자 주변의 다양한 인물 형상, 이른바 사회적 약자 또한 다 수 실려 있다. 아래 표는 골동록(汨蕫錄)에 수록된 사회적 약자와 관련된 일화 를 중심으로 정리한 것이다.
[표1]
9) 골동록 및 저자인 조보양에 대한 최근 논의는 다음과 같다. 한의숭, 汨蕫 錄 소재 일화의 서술 양상과 그 의미 , 어문론총63, 한국문학언어학회, 2015 ; 황동권, 八友軒 趙普陽의 〈擬恨賦〉에 대하여 , 大東漢文學45, 大東漢文學 會, 2015 ; 한의숭, 18세기 영남 남인의 필기집에 기술된 영주 관련 인물과 공 간 지역에 대한 연구 , 한국선비연구5, 동양대학교 한국선비연구원, 2017 참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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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60 진사 권창운의 딸의 효심 여성
5 64 영주 소룡산촌의 장정 양민
6 65 상주 별포수의 병자호란 참전담 평민
7 66 함창 사람의 이상한 병에 대한 의원의 처방 평민
8 81 사신과 시를 주고 받은 여성 여성 9 82 이웃 남자와 사통했다는 오해를 받은 열부 염씨 여성
10 84 꿈에 한 노인의 게시로 칡뿌리로 연명한 늙은이 평민
11 85 문경 지방 거사의 염불소리에 반응한 금부처 승려
12 86 흥주 땅 시골 남자가 겪은 신이한 사건 평민
13 87 베풀기 좋아하는 서울 출신 상인이 강원도 태백산으로 들어갔다가 인삼을 찾아 돈을 번 이야기 상인
14 88 조의양과 승려 연수의 이야기 승려
15 89 벽곡하는 은 수좌 이야기 승려
16 94 영주 산이 땅에 부인이 24개월만에 남자아이를 낳은 신이한 이야기 여성
17 102 풍기 은풍현에 농사꾼이 낸 잔꾀 평민
18 111 부석사 일엽이라는 중의 인색함에 대한 신이한 날씨 승려
19 114 상주 단밀현에 무인이 무식함으로 사위를 죽인 이야기 무인
20 137 숙종 때 여주에 감을 파는 사람이 임경업전을 듣다가 울분을 참지 못하고 돌을 던져 어떤 어린애가 죽은 이야기 평민
21 138 일지매라는 도둑 이야기 평민
22 142 서울에 사는 재담을 잘하는 송씨 평민
23 146 의성 땅에 평민으로 무과에 합격한 자의 이야기 평민
24 160 세종때 광대 막남, 인조때 해학 잘하는 자, 우스갯소리 잘하는 안기역 역졸 조문수 이야기 재인
25 162 용궁현 백성 장후선의 이야기 평민
26 184 김산음의 부인이 행한 지친에 대한 정 여성
27 188 맹인 점쟁이 엄득경의 신통함 맹인
28 189 맹인 점쟁이 전산립의 신통함 맹인
29 191 글씨로 유명했던 순흥사람 서신 평민
30 232 풍산 칠곡리의 황씨 형제와 영주 땅에 송가라는 아이가 어릴 때 총명함이 커서 사라진 것에 대한 이야기 평민
위의 [표1]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사회적 약자는 맹인, 농민, 상민, 노비, 승려, 재인, 여성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노비, 승려, 맹인, 여 성이라는 신분에서 확인되듯이 그들은 사회적 약자로 한계가 노정된 존재로, 이들을 포착하여 문헌으로 수렴한 것은 사대부였다. 따라서 사 대부 계급의 의식이 반영된 형태의 것으로 기록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조선후기 필기집에 수록된 사회적 약자에 대한 기록과 서술 방식 39 문헌기록으로 수렴된 것은 중세 질서 속에서 조선사회의 일원이자 존 재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특이한 요소가 발견되었음을 의미한다. 다음 장에서 이를 집중해 살펴보도록 하자.
1) 헌신과 배려를 실천하는 존재 사회적 약자가 포착되어 문헌으로 수렴되기 위해서는 저자의 구미에 맞는 특징적 양상의 실천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이런 점에서 골동 록에 포착된 사회적 약자의 형상은 중세 이데올로기를 실천하는 인물 이라는 범주에 속해 있다. 조선이라는 신분제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로 살아가는 것은 본인의 선택에 의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일정부분 천부 적 성격을 띤다. 따라서 골동록에 포착된 사회적 약자는 의지와 상관 없이 중세 이데올로기의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그 이면 에는 중세 이데올로기의 억압성과 폭력성이 자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때문에 골동록에 수렴된 사회적 약자는 기본적으로 중세 이데올로 기를 충실히 실천하는 인물 중심으로 형상화 되어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골동록46화의 주인공 강이라는 노비의 일화이다. 강이 일화는 을해년(1755)에 주인집 가족이 전염병에 걸려 여섯 명이 죽자 본인이 직접 초상을 치르고, 이후 본인의 몸 또한 이상하자 소를 팔아 관을 사 서 여섯 명을 매장한 다음, 5~6일이 지난 뒤 자신 또한 죽게 된 이야기이 다. 이야기 속에서 강이는 충이란 중세 이데올로기를 지키기 위해 스스 로를 희생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물로 등장한다. 이점은 아래와 같은 발화를 통해 확인된다. 내 이미 몸이 이상한지 여러 날이오. 만약 장사지내지 못하고 갑자기 죽으면 주인을 누가 묻어 주겠소? 필시 까마귀나 솔개의 밥이 될게요. 바라건대 내 죽기 전에 매장하고 싶소이다.10)
40 가족과 커뮤니티 3집
강이의 형상은 노비 출신의 인물이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는 상황에 서도 신념을 우직하게 실천하는 모습으로 서술된다. 기본적으로 강이 의 행동은 충이라는 중세적 이데올로기의 그늘 아래에서 수행된 것이 다. 이점은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에 기술된 논평을 통해서도 공히 확인 된다.11) 논평의 핵심은 천한 종의 신분이었음에도 삼강에 해당되는 행 동을 할 수 있었던 게 열녀인 어머니의 가르침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강이의 충을 충동시켰던 핵심이었으며, 위정자라면 교화를 위 해 마땅히 표창해야할 것임을 강조한 것에 방점이 찍혀있다. 강이의 행동을 포착한 저자는 당연히 하층민인 노비가 주인이 부재 한 상황 속에서 충이라는 이데올로기를 굳건하게 수행한 모습에 주목 하였다. 하지만 사대부나 노비라는 계급을 벗어나면 공통적으로 죽음 을 거부할 수 없는 한 인간이 소환된다. 이를 통해 강이는 비록 주노의 관계이긴 했으나 죽음을 마주한 주인 가족에 대해 자신의 할 수 있는 인정의 발현으로 망자에 대한 예의를 실천하고자 했음을 간취할 수 있 다.12) 이와 함께 골동록에는 여성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 또한 수록되어 있다. 대표적인 예로 82화는 합천 사람 김아무개의 아내인 열부 염씨와
10) 趙普陽, 汨蕫錄46화, “吾已不平數日矣. 若不葬徑死, 人誰墐之? 必爲烏鳶食矣, 願 及吾未絶之前, 納之壙.”
11) 趙普陽, 汨蕫錄46화, “嗟乎! 江伊者眞忠奴也. 凡士大夫之效忠盡節於其主者, 不爲 無人. 而或有爲名而勸者, 或有慷慨而殺身者, 或有爲利祿勉者, 是皆資之於學問見識, 而若奴江者, 氓隷下賤之人也, 有名不足爲子孫榮, 處事從容, 又非倉卒急遽之時, 主 家丁零, 又無日後之望, 而目不識丁, 不知義理之爲何物者, 其所樹立若是, 非得於天 者, 能如是乎? 其母烈女也. 年二十三寡, 終不改節, 敎江伊必以忠信, 江伊以此能忠於 主, 孝於母, 夫以一介編戶之民, 而一室之內, 三綱具備, 莅政者, 苟采而聞之, 表厥宅, 則其不爲風化之一助歟!”
12) 골동록에 포착된 하층민의 이데올로기 실천은 특정한 방향으로 펼쳐지는 메 시지의 가시성을 뛰어넘어 이면에 깔린 인간성에 대한 독해를 시사하기도 한 다.
조선후기 필기집에 수록된 사회적 약자에 대한 기록과 서술 방식 41
관련된 이야기이며, 184화는 산음현감을 지낸 김대현의 부인과 내외종 형제간인 정조 사이에 있었던 이야기이다. 두 이야기는 여염집이나 사 대부가의 여성 모두 중세적 이데올로기를 충실히 수행한 인물을 중심 으로 포착되어 있다. 이 가운데 184화를 살펴보면, 이야기의 구조는 김산음 부인의 자제와 정조 사이의 갈등 관계가 부인의 배려심과 진정에 의해 해소된다는 게 핵심이다. 여기서 갈등을 일으키는 대상은 남성 사대부로 정조와 부인 의 자제인 주서공이 대결구도를 형성하여 문제를 점차 확대시키는 상 황으로 끌고 간다. 상황이 극으로 치닫게 되었을 때 정작 문제를 해결하 는 인물은 대결구도의 두 남성이 아닌,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여성이다. 부인은 정조가 초정에서 목욕을 한다는 말을 듣고 여종을 시켜 새 비단옷과 따뜻한 죽 한사발을 준비하여 정조의 곤란함을 해결해 준다. 부인의 예지력을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한데, 부인의 행동은 정조에 대 한 진정성과 배려심을 증명한다. 이러한 행동으로 인해 정조는 지친의 진정을 확인하게 되며 노여움을 가라앉힌다. 사대부가의 여성은 계급적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하층민에 비해 약자 에 해당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젠더적 측면에서 남성과 비교했을 때 여 성은 약자에 해당된다. 이는 필기집에 기록된 여성의 존재가 난설헌 등 과 같이 특별한 소수에 국한된 것에서 위상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측 면에서 여성은 하층민과 같이 사회적 약자에 해당되는 존재인 것이다. 위의 일화는 사대부가의 여성이긴 하나 여성의 지혜로움과 배려를 남성의 편협함과 대비시켜 배치, 서술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사회적 약 자인 여성이 남성과의 대결 구도 속에서 존재 가치를 증명한 방법을 보여준 것으로 주목된다. 특히 남성 사대부라는 권력 앞에서 한없이 나 약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포용과 배려의 행위를 통해 남성 권력의 자 기 반성을 이끌어 낸 점에서 사회적 약자인 여성이 포착되어 기록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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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를 찾을 수 있다.
2) 잉여가 아닌 공존의 존재
골동록에는 맹인 점쟁이에 대한 일화가 수록되어 있는데 15화, 188 화, 189화가 그것이다. 3편의 일화 가운데 188화는 엄득경이란 맹인 점 쟁이의 이야기로 점치는 능력의 뛰어남을 부각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 져 있다. 이와 연결된 189화 역시 전산립이란 맹인 점쟁이와 관련된 일 화이다. 전산립의 경우 점을 치면 신기하게 잘 들어맞는 경우가 많은 것에 있어서는 엄득경과 별반 다른 게 없다. 하지만 이야기 속에서 점치 는 묘책과 관련된 어떤 이의 물음에 대한 전산립의 대답이 이목을 끈다. 내 점술은 다른 게 없고, 누가 병증을 물으면 ‘산다.’하고, 과거시험에 대해 물으면 ‘떨어진다.’라고 하였으니 사람들이 이것으로 제가 점을 잘 친다고 합니다. (중략) 사람이 백년 안에 죽는 것은 단지 하루이고, 과거는 수많은 사람 중에 합격한 사람이 겨우 한 명입니다. 아프면 반드 시 죽고 과거를 보면 반드시 합격한다는 걸 쉽게 그것을 말할 수 있겠습 니까? 세간에서 일을 물음에 이 두 가지 일을 제외한 밖으로는 많지 않습니다. 정말로 내 점법을 쓰면 비록 간혹 맞지는 않더라도 또한 멀지 도 않을 것입니다.13) 전산립의 위와 같은 대답은 점치는 방법이 신이한 데 있는 게 아님을 말하는 게 핵심이다. 맹인 점쟁이가 초월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 라, 생활 주변과 관련된 상황을 관찰하고 논리적으로 판단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임을 강조한다. 위의 일화는 맹인이라는 장애를 가진 점쟁
13) 趙普陽, 汨蕫錄189화, “吾之術無他, 人問病則曰, 生. 問科則曰, 落. 人以是稱吾之 善卜. (中略) 人於百年之內, 死者只一日. 科於千百之中, 得者纔一人. 病之必死, 科之 必得, 其可易言之哉? 世間可問事, 除此二事外無多, 苟用吾之術, 雖或不中, 亦不遠 矣.”
조선후기 필기집에 수록된 사회적 약자에 대한 기록과 서술 방식 43
이의 입을 통해 무속에 대한 맹목적 집착보다는 합리적인 사고를 통한 실천의 중요성을 조심스레 보여준다. 골동록에 수록된 188화와 189화 맹인 점쟁이 일화는 맹인이자 점 쟁이라는 조선 사회 하층민을 수록하되 흥미꺼리의 대상으로만 바라보 지 않는다. 이들은 물론 장애를 가진 사회적 약자로 돌봄의 대상이 된 다. 하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있어 돌봄을 받아야 될 약자로 그들 을 객체화시키지 않았다는 게 중요하다. 비록 정상인에 비해 맹인이라 는 장애가 부각될 수는 있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을 잘 치는 능력 을 가진 것에 주목했다. 타인의 미래를 언급하는 데 있어서 마치 자신의 점술이 엄청난 예지력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말 하려는 합리적 사고에 기인한 행동임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골동록에 수록된 사회적 약자는 단순히 호기심어린, 호혜적 시선의 대상으로만 존재하지는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은 사회적 약자가 골계의 방식을 활용하여 상층 인물과 사회를 비판하는 역할을 일정부분 수행하는 것에서 엿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골동록160화에 수록된 일화가 바로 그것으로, 160화는 세 종 때 광대 막남, 인조 때 해학을 잘하는 사람, 안기역 역졸 조문수 세 사람의 골계적 행동을 주목하여 기록하였다. 특히 160화의 마지막 부분에 “학사대부가 골계를 비루하게 여겨 칭찬 하여 기술하지 않았다. 어리석은 백성의 무리들은 다투어 사모하여 본 받으려 했으나, 그와 비슷하게 할 수 없었다. 비록 실없고 속이는 이야 기일지라도 또한 타고나는 것이지 배워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14) 라고 하여 세 사람의 골계적 행동이 타고난 것에서 비롯되었음을 강조 하였다. 160화는 광대와 같은 사회적 약자를 주목하되 그들이 행위가 상층과 사회에 대한 비판의 기능을 수행한 것에 대해서 간취했다. 이점
14) 趙普陽, 汨蕫錄160화, “學士大夫鄙之, 無所稱述. 然氓隸之徒, 爭慕效而不得其彷 佛, 雖詼詭之談, 亦得之天稟, 非可學而能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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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광대라는 사회적 약자가 그들과 같은 처지에 놓인 다수를 대변하여 골계와 해학을 통해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려 한 역할에 주목한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놓고 봤을 때, 골동록에 수렴된 사회적 약자는 기본적으로 중세 이데올로기의 보편적 질서를 충실히 구현하는 쪽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조선 사회에 존재하는 구성원으 로써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일정부분 인식하고 행동하려 한 지향 이 감지되기도 한다. 이점은 골동록에 수렴된 사회적 약자의 형상을 기록한 조보양의 인식 지향과도 맞물린다고 할 수 있다. 최소한 동시대 같은 공간에 있었던 타인에 대한 시선이 교조적이거나 억압적, 편향적 으로만 존재한 것은 아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18세기 이후 문집 소재 잡록이나 잡저에 사대부를 제외한 다양한 사회적 약자들을 수렴 하여 기록하는 양상이 대폭 증가하는 것으로 연결되는 점이기도 하다. 따라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기록은 조선사회가 계급사회였음에도 불구 하고, 존재에 대한 기록이라는 증명을 통해 다양한 구성원이 살아 숨쉬 고 공존하는 생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자료로 의미가 있다.
3.골동록(汨蕫錄)에 활용된 서술 방식의 양상
1) 실존적 존재로 부각시키기 위한 인물전(人物傳)의 서술방식 차용 골동록에 포착된 사회적 약자들의 형상은 주로 저자인 조보양의 직접경험이나 전문을 통해 기록된다. 이들은 그 존재 자체가 그다지 특 기될만한 인물에 해당되지 않는다. 조선사회에서는 마치 공기처럼 있 는 듯 없는 듯 주목하지 않는다면 삶 자체가 기록되지 않는 인물이다. 사회에서 철저하게 배척되었던 소수자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조선후기 필기집에 수록된 사회적 약자에 대한 기록과 서술 방식 45 이들에 대한 기록이 조금이나마 신뢰를 얻으려면 존재 자체를 명확하 게 밝히는 방식이 최선이었다.
㉮ 노비인 강이는 영주 화기촌 사람이다. 주인에게 충성스러워 상투 틀 때부터 예순 살이 되도록 조금도 거스르는 기색이 없었다.15)
㉯ 예천 남쪽에 의원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성은 김이며, 이름은 응립이었다. 그의 기술은 의서도 없고 배운 것도 없으며, 탕제를 쓰지 않고 단방을 썼지만 증세에 따라 투약하여 효과를 보지 않은 적이 없었다.16)
㉰ 내가 젊을 때 지장사에서 독서했는데 경철이라는 승려가 있었다.
17) 위의 예문 ㉮, ㉯, ㉰를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사회적 약자와 관련된 이야기를 서술하기 위해서는 존재를 먼저 밝혀야 했다. 그러므로 이야 기의 서두에 인적사항과 관련하여 ‘어디에 사는 누구다’라는 정도의 소 개가 제시되고 있다. 이는 사회적 약자와 관련된 기록이기에 먼저 인물 의 존재 자체를 인식시키고 출발해야함을 보여준다. 이야기가 사회적 약자와 관련된 전기의 성격을 띄고 있기에 인물전의 서두 방식을 활용 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아무개 촌의 아무개’라는 불특정한 인물이 아닌 사실에 근거한 이야기임을 밝히기 위해 지역과 인명, 신분을 고스 란히 노출하여 서술하는 방식을 사용하였다. 이점은 비록 짧은 신원 소개일지라도 존재로서의 개인을 부각시키고 있는 게 특징적이라 할 수 있다. 이들 사회적 약자는 전개되는 이야기
15) 趙普陽, 汨蕫錄46화, “奴江伊者, 榮川花岐村人也. 忠於其主, 自結髮, 至六十, 無幾 微忤逆之色.”
16) 趙普陽, 汨蕫錄45화, “醴泉南有業醫者, 姓金名應立. 其爲術, 無方書, 無傳授, 不用 湯劑, 專用單方, 然對症投藥, 無不立效.”
17) 趙普陽, 汨蕫錄89화, “余少讀書地藏寺, 有僧景澈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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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일정부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주 목되는 존재로 등장한다. 특히 위와 같은 인물들의 두드러진 특징은 사 회적 약자임에도 불구하고 사대부와 필적하거나 오히려 뛰어넘는 대사 회적 행동을 수행했다는 점에 있다. 이런 측면에서 신원 소개가 가미된 인물전의 서술방식을 활용한 것 은 사회적 약자의 실존을 부각시키고, 기타 등등으로 취급되는 게 아닌 하나의 명징한 개체로 주목하고자 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사회적 약자가 이야기의 중심 인물로 소환되어 겪게 되는 사건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통해 대사회적 메시지를 던지고자 한 정황이 발견된다는 점에서 골동록은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수렴한 특징이 엿보인다. 2) 생동감을 보여주기 위한 ‘이야기하기’의 서술방식 활용 골동록은 기본적으로 편자의 전문에 바탕을 둔 것이긴 하나, 사회 적 약자를 기록하는 방식에 있어 상대적으로 여타 필기집에 비해 서사 적 성향이 가미된 이야기하기의 서술 방식을 차용하고 있다. 특히 이러 한 일화들의 경우 작품의 서두를 여는 방식이 일화 및 야담에서 구연전 승의 방식을 통해 이야기를 열어나가던 방식과 유사함을 발견할 수 있 다. 아래 두 예문을 통해 이점을 살펴보도록 하자.
㉱ 상주 중모현에 사는 황씨 성을 지닌 선비가 사정이 있어 영동에 갔다 가 민가에서 유숙했는데 연세가 아흔이 넘은 주인 영감이 있었다. 밤에 관솔불을 밝히고 이야기를 한참 나누다가 손님이 상주에 산다는 말을 듣더니 공손한 태도로 스스로 말하기를, ‘젊은 날 상주의 별포수였지요. 정축년 쌍령 전투에서 우병사 예하에 있었는데 막 목책으로 내려가 진 을 치려 할 때였어요. 좌·우병사는 모두 늙고 겁먹어 쓸데없는 사람이었 지요.’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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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저녁 서울양반은 영감 할멈과 함께 등불 아래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할멈이 문득 영감을 힐끗 보더니 미소를 띠며 말을 꺼냈 다. (중략) 할멈은 웃음을 띠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늙은이는 본디 서울의 양가에서 태어났답니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외숙모 손에서 자 랐지요. 외숙모는 나를 불쌍히 여기지도 않고 하필이면 내시에게 시집 을 보냈어요.’19) 위의 예문 ㉱는 골동록65화이며, 예문 ㉲는 임매(任邁, 1711~1779) 에 의해 편찬된 잡기고담(雜記古談) 소재 5화 〈환처(宦妻)〉의 서두 부문이다. 두 예문에서는 공통적으로 지역에 사는 민가에 손님이 찾아 와 유숙하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민가의 주인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 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조선 중기 필기집인 송도기이(松都記異)를 기점으로 일화에 서 사대부에서 비사대부로 이야기판이 확장20)되면서 이야기하기의 방 식에 영향을 받은 것임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임매의 잡기고 담은 기본적으로 17세기 대표적 야담집 천예록(天倪錄)21)의 저자인 임방(任埅, 1640~1724)의 손자이기에 가문 내 야담의 향유 전통과 관련 하여 이해할 수 있다. 반면 조보양의 골동록은 임매와 같은 18세기를 살았던 사람이면서도 안동 풍천현을 중심으로 자신의 전문에 바탕을 둔 이야기를 수록하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가문 내적 전통에서는 비
18) 趙普陽, 汨蕫錄65화, “中牟黃姓士人, 綠事往永同地, 寄留村舍, 有主翁年九十餘. 夜爇松明, 討話良久, 聞客居尙州, 致款自言, ‘少日爲尙州別炮手, 丁丑雙嶺之戰, 隷 右兵使部下, 方下寨布陣時, 左·右兵使皆老㥘無用之人.’”
19) 任邁, 雜記古談, 〈宦妻〉, “一夕, 生偕翁姬, 敍話於燈下, 姬忽睨翁微笑曰 (中略) 姬乃帶笑而言曰 : ‘老身本京城良家子, 早失父母, 育于舅妻, 舅妻不加憐愛, 以我嫁于 內官爲妻,.’”
20) 조선 초·중기 일화에서 이야기판의 형성과 이야기하기에 대해서는 이강옥, 일 화의 형성 원리와 서술 미학, 보고사, 2014, 134~145면 참조.
21) 天倪錄에 대해서는 임방 저, 정환국 역, 천예록,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200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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껴나 있다. 하지만 조보양은 수록 이야기의 서사성을 강화시키기 위해 이야기하기의 방식을 적극 차용하고 있다. 문제는 야담에서 주로 활용되는 구연진술을 통해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방식이 골동록에서도 확인된다는 점이다. 특히 예문 ㉱는 병자호란 당시 조선군이 쌍령 전투에서 전멸하다시피 한 상황에 처하 게 된 원인을 지휘장수의 무능함으로 돌리고 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 를 드러낸 것에 해당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야기하기의 주인공으 로 비사대부가 등장하여 상대적으로 묻히거나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역 사적 사실의 이면적 이야기를 진술한다는 점이다. 이는 사회적 약자가 특정한 역사적 사건에 대해 자신의 시선으로 숨겨진 민낯을 고발하는 방식으로 존재를 드러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구연전승의 서술 방식은 신이한 소재와 결합되어 골동록 소 재 이야기의 서사성이 강화되는 지점과도 맞물리기도 한다. 예를 들자 면 앞선 표의 84, 85, 86, 87, 94, 111, 114, 146화 등 신이한 이야기를 소재로 한 작품이 그것이다. 흥주 땅에 한 시골 남자가 있었는데, 약초를 캐는 것으로 업으로 삼았 다. 하루는 태백산에 들어갔는데 많이 캐려고 욕심내다가 해가 지는 것 도 몰랐다. 피로가 심하여 돌아가려고 하는데 석양은 이미 산허리를 넘 었다. 돌아갈 길이 아득하여 사방을 헤매보았지만 가야 할 방향을 몰랐 다. 문득 어떤 사람이 나무를 잡으며 벼랑에 올라서더니 바삐 산 뒤쪽을 향해 갔다.22) 위의 예문은 골동록86화로 ‘약초 캐는 업을 가진 흥주 땅의 남자’ 라는 평민을 등장시켜 이야기의 서두가 서술된다. 그러면서 인물의 신 22) 趙普陽, 汨蕫錄86화, “興州地有一村夫, 以採藥爲業. 一日入太白山, 貪多務得, 不 覺日之將暮. 倦極欲歸, 則夕陽已過山腰. 歸路杳茫, 彷徨四顧, 莫適所向. 忽有一人, 攀木緣崖, 忙向山背去.” 조선후기 필기집에 수록된 사회적 약자에 대한 기록과 서술 방식 49 원에 대해 집중하기 보다는 인물에게 펼쳐진 상황을 묘사하는 서사의 지점으로 바로 진입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 방식은 이른바 야담에서 자 주 구사되는 것으로 이야기의 진행과정에 몰입하도록 하는 효과를 만 든다. 골동록속에는 신이한 소재를 다룬 이야기에 하층민이 주된 인물로 등장한다. 그러면서 핵심 인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며, 그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낸다. 물론 이야기 속에 드러낸 하층민의 목소리 는 사회비판적 성향이 강하다거나 그러진 않는다. 서술의 초점 또한 신 이함에 맞춰져 있기에 하층민이라는 특정한 조건은 다소간 약화되기도 한다. 하지만 하층민이라는 사회적 약자가 경험한 신기한 이야기를 다 수 수렴하고, 그 속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일정부분이나마 드러낸 것은 기층에 대한 관심을 피력한 것으로 이해되는 지점이다. 이점은 여타 필기집과는 다른 골동록만의 특징으로 이러한 방식을 통해 사회적 약자가 등장하는 이야기의 흥미성이 강화되는 경향이 엿 보인다. 이러한 양상은 골동록에 수록된 이야기 가운데 서사성이 상 대적으로 강화되어 소설적으로 경사된 작품이 여럿 보이는 것에서 아 울러 확인할 수 있다.23) 4. 조선후기 필기집에 수록된 인물 기록과 다양성의 의미 앞서 살펴본 골동록에 기록된 다양한 사회적 약자들은 중세 사회 의 질서에 포섭될 수밖에 없는 존재였으나 또한 당대 구성원의 일부이 기도 했다. 다만 역사적으로 존재와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마이너리티
23) 대표적인 작품이 골동록116화 ‘윤용 이야기’이다. 이에 대해서는 한의숭, 汨蕫錄 소재 일화의 서술 양상과 그 의미 , 어문론총63, 한국문학언어학 회, 2015, 194~200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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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실존했을 뿐이다. 사회적 약자로 태어난 것은 본인들의 선택에 의한 게 아니라, 그러한 운명을 부여받은 것이었다. 골동록에 기록된 사회적 약자들을 통해 우리는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구성원의 존재를 재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개인의 신변잡기적 일상과 주변 인물을 기록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필기의 장르적 성격에 일차적으로 기인한 것이다. 하지만 다수의 필기가 사대부 일화를 중심 으로 기록된 것에 반해 골동록은 지배계급의 시선으로 포섭된 존재 이긴 하나, 공존하던 사회적 약자들을 역사적 존재로 호명한 것에서 특 별한 의미를 가진다. 골동록의 이러한 특징은 동시대에 편찬된 여타 필기집에 수록된 인물의 성향과 비교해 봤을 때 명징하게 구별된다. 예를 들어 조보양과 동시대 인물인 이규상(李奎象, 1727~1799)의 병세재언록(幷世才彦 錄)24)의 경우 이른바 사회적 약자로 지칭될 수 있는 인물들에 대한 기록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기껏해야 여성 인물 몇 명 정도가 수록되 어 있을 뿐이다. 그마저도 ‘열’이란 항목에 편입되어 그 존재를 일정부 분 드러내는 정도다. 사대부의 시선에 포착된 여성으로만 존재할 뿐 개 인적 주체로 여성을 응시한 것은 편찬자의 계산에 들어있지 않았다. 그 것이 가능하다면 신사임당이나 허난설헌의 경우처럼 역사적으로 특별 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는 사대부가의 여성이라는 예외적인 경우였을 때였다. 물론 연경재(硏經齋) 성해응(成海應, 1760~1839)이 편찬한 초 사담헌(草榭談獻)25)의 경우처럼 사회적 약자를 일정부분 포착한 게 존재하기도 한다. 하지만 골동록과 비교해서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 편이며 호혜적인 시선이 여전히 감지된다.
24) 幷世才彦錄에 대해서는 민족문학사연구소 한문분과 옮김, 18세기 조선인물 지, 창작과비평사, 1997 참조. 25) 草榭談獻에 대해서는 손혜리·이성민 역, 연경재 성해응의 초사담헌, 사람 의 무늬, 201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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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반해 골동록에 기록된 다수의 사회적 약자들의 형상은 18세 기 영남 남인이라는 향촌지배층에 의해 사회 구성의 일원으로 그 존재 를 일정부분 인정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전근대 계급사회를 평면 적으로 이해하는 방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사 회적 약자에 대한 기록은 사대부의 시각에 입각한 것이긴 하나 시공간 에 공존하던 약자의 존재를 인정하고 관찰하여 생동감 있게 형상화한 증거로 중요하다. 이점은 다양성의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이 마 련될 수 있음을 주목하는 것이기도 하다. 골동록이 여타 필기집의 경우와 구별되는 지점에 여기서 발견된다. 조선시대에 실존한 수많은 사회적 약자는 신분제도라는 틀로 인해 그림자처럼 떠다니며 인정받지 못한 존재였다. 하지만 문헌 기록을 통 해 남겨진 이들은 기록물 자체가 역사적 실체로 존재했음을 인정하는 것으로 이들은 성별, 신분, 직업이 상이한 존재로 등장하여 나름의 삶을 정초해 나갔다. 사대부의 시선과 인식에 의해 기록된 존재이긴 하나, 주변으로 눈을 돌렸을 때 같은 시공간에서 공생하는 공동체의 구성원 이었다. 때문에 이들에게 눈을 돌리는 것은 자신을 중심으로 한 평면적 세계에서 가족과 공동체를 중심으로 확장되는 다원적 세계를 인식할 수 있게 된 것임을 의미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향촌사회에서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애민의식 또한 사회적 약자 를 비롯한 공동체 구성원에 대한 다양성을 인정한 행동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필기류를 중심으로 한 고전산문 자료는 문집 내에 다수 수록되어 있 다. 그 속에는 아직까지 세상에 존재가 드러나지 않은 수많은 인물들이 남아있을 것이다. 사대부 뿐만 아니라 동시대에 공존한 사회적 약자들 또한 많이 있을 것인데, 이들에 대한 발굴과 소개는 지속될 필요가 있 다. 특히 이점은 고전산문 연구에서 새로운 자료의 발굴을 통해 전근대 기록 문헌의 다양성을 주목하는 것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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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맺음말
본고는 고전산문 자료 가운데 하나인 필기집에 수록된 사회적 약자 의 형상과 서술 방식을 주목하고, 그것을 활용하는 방향에 대해 고찰한 것이다. 본고에서 주목한 텍스트는 18세기 영남 남인 조보양이 편찬한 필기집 골동록이다. 골동록은 조선시대에 편찬된 여타 필기집과 같이 시화, 일화, 사화, 논변 등과 관련된 단형서사가 주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골동록의 경우 맹인·여성·승려·점술가 등 조선사회에서 사 회적 약자에 해당되는 인물 일화가 다수 수록되어 있어 주목을 끈다. 그들은 조선사회에서 주목받지 못한 이들이며 역사적 존재로 잘 거론 되지 않는 일반 기층민이었다. 하지만 엄연히 생동하는 존재로 조선 사 회의 구성원이기도 했다. 조보양의 시선에 포착된 사회적 약자이긴 했 지만, 그들은 당대 조선사회를 구성한 다양한 일원 가운데 하나로 생동 감 있는 존재로 호명되었다는 게 중요하다. 골동록에 포착된 사회적 약자는 기본적으로 중세 이데올로기의 구 도 안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억압적 구조 속에서 인정을 구현하 기 위해 노력하거나 배려와 포용을 실천하는 존재로 형상화 되었다. 그 리고 이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인물전의 서술방식을 차용하여 존재감을 부각시키고, ‘이야기하기’ 방식을 통해 생동감 있는 존재로 묘사되고, 포착되었다. 골동록에 기록된 사회적 약자의 인물 형상은 동시대 필기집에 비 해 상대적으로 다양하게 등장하는 편이다. 이러한 인물 형상을 주목하 고 기록한 것은 최소한 조선 사회의 구성원으로 존재를 일정부분 인정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이 사회적 약자를 당당한 역사의 주체 로 전면화 시킨 것이라 하긴 어렵다. 하지만 사회적 약자를 응시하고 기록하여 존재와 역동을 포착하고자 한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이러한 고전산문 자료에 수렴된 사회적 약자의 존재는 전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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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역시 다양한 사람들이 공존한 사회였음을 증명하는 것으로 주목 된다. 그리고 이러한 자료는 혐오와 배제, 차별을 운운하는 우리 사회에 다양성의 의미를 전근대사회의 문헌 기록을 통해 재조명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따라서 고전산문 텍스트의 활용은 해당 자료를 바라보는 데 있어서 전근대적이라는 일방적이고 단선적인 시각에서 벗어나는 것 으로 부터 출발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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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The record and description of the Social Underdogs in the Pil-Gi-Jib of the late Joseon Dynasty - a focus on Gol-Dong-Rok - Han Eui Soong This paper focuses on the shape and description of the socially disadvantaged in Fil-gi-jip, one of the classical prose materials, and considers the educational meaning it has. The text that I've noticed in this paper is Gol-Dong-Rok, a Pil-Gi-Jib the collection of various forms of writings by Cho, Bo-Yang, known as a Nam-In in Yeong-Nam Province in the 18th century. Gol-Dong-Rok usually consists of short narratives such as discussions on writing poems, anecdotes, thoughts on historic events, and logical arguments like other Pil-Gi-Jib compiled during the Joseon Dynasty. However, Gol-Dong-Rok attracts attention as it contains many anecdotes of the socially disadvantaged in Joseon society such as blind people, women, monks, and fortune tellers. They were not noticed in Joseon society and were ordinary base people who were not often mentioned as historical beings, but they were also members of the Joseon society as they were strictly alive. Although they were socially disadvantaged people captured by Cho, Bo-yang's gaze, it is important that they were called alive as one of the various members of the Joseon society of the time. The social underdogs captured in the Gol-Dong-Rok were basically moving within the structure of medieval ideology. However, it was shaped as a person who tried to realize compassion in an oppressive structure or practiced consideration and inclusion. In order to effectively reveal this, the character's narrative style was borrowed to highlight its presence, and it was described and captured as a lively being through the 'talking' method. The figures of the socially disadvantaged figures recorded in the Gol-Dong-Rok are relatively diverse compared to the contemporary Pil-Gi-Jib. In addition, attention and records on the various figures are at least partially recognized as members of Joseon society. Of course, it is hard to say that this has completely transformed the socially disadvantaged into a proud subject of history. However, it is meaningful in that it aims to capture existence and dynamics of the socially disadvantaged by staring at and recording them. In particular, the presence of the socially disadvantaged converging on these classical prose materials proves that the Pre-modern Society was also a society where various people coexist. And this material can help shed light on the meaning of diversity in our society, which calls for disgust, exclusion, and discrimination, through the literature records of the Pre-modern Society. Therefore, the educational use of classical prose texts needs to start from escaping one-sided view of pre-modernity in looking at the data. Key words: Gol-Dong-Rok, 18th century, Nam-In in Yeong-Nam, Social Underdogs, shape, description, Pil-Gi-Jib, Classical pro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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