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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향기를 찾아서

호남 최초로 3.1운동을 시작한 익산시/지촌허룡 매조도8폭일지병풍(梅鳥圖八幅一枝屛風)/뒤는 금분지에 쓴 글◐작촌 조병희 Cho Byung-Hee, 鵲村 趙炳喜 (1910 ~ 2002)

by 晛溪亭 斗井軒 陽溪 2024.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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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최초로 3.1운동을 시작한 익산시!!!

우리나라 헌법의 첫머리는 '3.1운동이 대한민국 탄생의 뿌리'라는 사실을 밝히면서 시작됩니다.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 대한민국 헌법 전문(前文)은 제헌의회 의장인 이승만의 주장으로 넣게 됐으며 그는 3.1혁명이라고 칭했습니다.


따라서 우리 지역이 호남은 물론 한강 이남 지역에서 최초로 3.1운동을 시작했다는 것은 크게 주목받아야 할 매우 중요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타 지역민들은 물론 익산시민들조차 제대로 모르고 있으니 너무나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유관순 열사가 주도한 아우내장터의 3.1운동은 4월 1일부터 시작되었고, 문용기 열사가 순국한 이리의 3.1운동은 4월 4일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익산시에서는 서울에서 3.1운동이 시작된 바로 다음 날인 3월 2일부터 3.1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천도교 간부들인 박영진(朴永鎭, 1856~1928)정대원(丁大元, 1862~1929)김병호(金秉鎬, 1865~미상)ㆍ고총권(高寵權, 1867~1959) 등이 여산면과 황화면 등에서 독립선언문을 배포하며 만세운동을 독려하다가 체포되어 실형을 받은 것입니다.

공훈전자사료관(https://e-gonghun.mpva.go.kr/)에 올라가 있는 이들의 기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박영진(朴永鎭, 1856~1928) 본적 : 전라북도 익산군 황화면 황화정 992

1919년 3월 2일 전주(全州) 천도교구를 통해 서울의 독립만세운동에 관한 소식을 전해듣자 익산군의 교구장으로서 교구 임원과 교인들을 모아 독립운동의 실천방안에 대해 의논하고 익산군 내의 기독교측과 연락하여 독립선언서를 황화면(皇華面)과 여산읍(礪山邑) 등지에 배포하다 일경에 붙잡혔다.

이해 4월 18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형을 선고받고 공소하였으나 5월 13일 대구복심법원과 6월 19일 고등법원에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대원(丁大元, 1862~1929) 본적 :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운산 18

1919년 3월 2일 전북 익산군(益山郡) 천도교 사무실에서 교구임원 및 교인들과 함께 독립운동의 실천방법을 의논하고, 황화(黃華)·팔봉면(八峰面) 지역의 동원 책임자가 되어 익산군 내 황화면과 여산읍(礪山邑) 등지에 독립선언서 등을 배포하다 일경에 붙잡혔다.

같은 해 4월 18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형을 선고받고 공소하여, 5월 15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부분 취소되었으나 형은 변경되지 않아 8월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병호(金秉鎬, 1865~미상) 본적 : 전라북도 익산군 낭산면 호암

김병호는 전북 익산군(益山郡)에서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19년 3월 1일, 독립선언서와 독립운동에 관한 연락이 전주와 옥구 지역을 통해서 익산군의 천도교와 기독교 측에 전달되었다. 천도교구실의 박영진(朴永鎭)은 곧장 교구 임원과 김병호 등 교인들을 모아서 독립만세 시위 계획을 의논하였다. 이때 참여한 다른 교인들은 이중열(李仲悅)·이유상(李有祥)·정대원(丁大元)·유봉유(劉奉裕) 등이었다. 기독교 측과도 연락을 하여 함께 독립운동을 전개하기로 하였다. 당시 천도교인이 많던 익산군에서는 천도교의 기념일인 제1세 교주 최제우(崔濟愚)가 순도(殉道)한 3월 10일을 거사일로 정했고, 천도교에서 순도기념식이 끝난 후 오후 9시를 기하여 군내 각면·각리에서 일제히 산 위에 횃불을 들고 그 횃불을 신호로 해서 만세시위에 들어가기로 했다. 김병호는 3월 2일, 독립선언문을 익산군 여산읍(礪山邑)에 배포했다.

체포된 김병호는 3월 28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4월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고총권(高寵權, 1867~1959) 전라북도 익산군 황화면 마전 372

전북 익산(益山) 사람이다. 1919년 3월 3일 익산군 천도교구장인 박영진(朴永鎭)·정대원 등 여러 천도교인들과 같이 이곳에서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하고 금마면(金馬面) 등의 연락과 동원 책임을 맡았으며, 여산읍(礪山邑) 노상에서 독립선언서를 배부하며 시위 군중을 규합하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같은 해 7월 4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태 90도를 받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신막마을의 마을회관 자리는 가람 이병기의 아우이며 3.1운동에 참여하여 옥고를 치른 이병석 선생이 살았던 곳이라고 한다.

또한 이들이 체포된 여산면에서는 3월 10일에 익산군 지역 최초로 대규모의 군중이 참여하는 3.1운동이 다시 일어나게 됩니다.

익산시 최초대규모 군중이 참여하는 3.1운동시작한 여산면 신막마을에는 3.1운동관련된 안내판이나 기념물전혀 없습니다.

이 시위로 인해 체포되어 실형을 받고 공훈록에 올라간 인물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정(李侹, 1884~1925) 본적 : 전라북도 익산군 여산면 원수 628

전북 익산(益山) 사람이다. 익산군 여산면 원수리(礪山面 源水里)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박사국(朴士國)·이병석(李秉釋)과 이 지역에서의 독립만세운동계획을 수립하였다. 1919년 3월 30일 이들은 '조선자주독립(朝鮮自主獨立)'이라고 쓴 큰 깃발을 제작하여 많은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행진을 벌이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그후 4월 18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았고 5월 1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공소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사국(朴士國, 1888~1934) 본적 : 전라북도 익산군 여산면 원수

전라북도 익산(益山) 사람이다.

1919년 3월 10일 이정(李)·이병석(李秉錫)·정영모(鄭永模) 등과 함께 여산면(礪山面)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그는 이날 이정·이병석과 함께 원수리(源水里) 정영모의 집으로 주민들을 불러놓고,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자고 제의한 뒤, 「조선자주독립」이라고 쓴 대형 깃발을 만들고, 2백여명의 시위군중의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헌병분견소로 만세시위행진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결국 체포되어, 이해 5월 1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병석(李秉釋, 1894~1930) 본적 : 전라북도 익산군 여산면 원수 570

전북 익산(益山) 사람이다.

1919년 3월 9일 익산군 여산면(礪山面)에서 이정(李)·이병석(李秉錫)·정영모(鄭永模) 등과 함께 정영모(鄭永模) 집에서 여러 사람들에게 독립운동에 분발할 것을 강조하고 '조선자주독립'이라고 쓴 큰 깃발을 만들어 200여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여산군 헌병분견소로 진출하여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운동을 벌이다가 붙잡혔다.

이해 4월 16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全州支廳)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형을 선고받고 공소하였으나 5월 1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당하여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3월 10일의 만세운동에 참여하여 국가공훈록에 등재된 위 세 사람 중 이정(李侹) 가람 이병기(李秉岐, 1891~1968)의 숙부이고, 이병석(李秉釋)은 가람의 아우입니다.

그런데 가람의 조카이자 전주예총회장을 지낸 작촌(鵲村) 조병희(趙炳喜, 1910~2002)가 쓴 『완산 고을의 맥박』에 수록된 내용에 의하면, 3월 10일의 만세운동은 가람의 부친인 이채(李採, 1868~1948)와 중부인 이신(李信)도 함께 참여했으며, 체포되었다가 풀려났다고 합니다.

​▲ 가람 이병기의 부친인 이채 선생의 행적비 뒷면에는 그가 3.1운동에 참여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가람의 가계인 연안 이씨 종중의 지회장이며 저헌학문연구소장인 이지희 박사가 주도해서 가람의 생가 터에 세운 이채의 행적비에도 새겨져 있습니다.

※ 여산에서 3.1운동이 일어난 당시에 가람은 여산공립보통학교의 교사였는데, 그 시기를 전후하여 교사직을 그만 두고 만주로 가려는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 가람 이병기의 부친 이채는 애국계몽운동 단체인 호남학회의 대표적 인물들 중 한 명이었다. [이미지 출처 : 두산대백과사전]

가람의 부친 이채 변호사는 호남의 애국계몽을 대표하는 인물들 중 한 사람으로, 1907년 7월에 서울에서 활동하던 호남 출신의 지식인 112명이 설립한 호남학회의 3차모임에서 회계원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여산에 사는 이채 씨가 일진회(一進會)를 성토(聲討)하는 글을 기고했다는 내용을 게재한 1910년 1월 21일 대한매일신보 2면 기사

가람이 일제의 탄압과 회유에 굴하지 않고 우리 민족의 말과 글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며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실천하는 애국지사로 남을 수 있었던 것도 이채 선생과 같은 훌륭한 부친이 있었기에 가능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출처] 호남 최초로 3.1운동을 시작한 익산시|작성자 호산

 

[지촌허룡 매조도8폭일지병풍(梅鳥圖八幅一枝屛風)]

지촌허룡 매조도8폭일지병풍(梅鳥圖八幅一枝屛風)

村邊楊柳已拖黃[촌변양류이타황]

☞마을가 버들은 이미 노란 빛 내보이는데

一路雲深舊講堂[일로운심구강당]

☞한 줄기 길에 구름 짙게 드리워진 옛 강당이여.

偶向梅花村裏度[우향매화촌리도]

☞우연히 매화 향해 마을 안길 걷노라니

芒鞋到處雪痕香[망혜도처설흔향]

☞짚신 닿는 도처에 눈 자국마저 향기로워라.

甲子仲春[갑자중춘]

☞갑자년 2월에

道峯山人[도봉산인]

지촌 허용(芝村 許龍)


지촌 허룡 선생님 프로필
-.충남 서산 출생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
-.단원예술제 심사위원
-.전통예술대상전 초대작가
-.서울 미술제 심사위원
-.한국문화 대예술제 심사위원
-.한국예술전람회 초대작가상 수상
-.83,대예술제 초대작가
-.한국미술대전 심사위원
-.현대미술대상전 심사위원
-.한국미술 '84,대제전 심사위원
-.동경 아세아미술제 초대작가
-.신미술대전 심사위원
-.세종미술제 초대작가
-.한국서도학회공모전 심사위원
-.현대미술학회 문화상 수상
-.전국전통미술공모전 심사위원
-.전통미술공모전 운영위원장 역임
-.한성예술제 심사위원
-.한국미술협회 회원
-.도봉미술작가회 회장
-.한중서법명가전 출품
*.개인전*
-.개인전(동덕미술관1988)
-.1992년 개인전 (조선일보미술관)
-.1993년 대구시민회관
-.1994년경남 진주 상호신용금고
-.1994년 일본동경
-.1995년세종문화회관
-.전통동양화보 출간
2002년대한민국 미술대전심사위원
현재는 고문으로있음
89세때  한국초유이자 아시아권에서 최초로 프랑스  앙데팡당전에초대되었음.

 

◐작촌 조병희 Cho Byung-Hee, 鵲村 趙炳喜 (1910 ~ 2002)

뒤는 금분지에 쓴 글로 보입니다.
◐작촌 조병희 Cho Byung-Hee, 鵲村 趙炳喜 (1910 ~ 2002)
*1910년 충남 논산 강경읍 채산동 출생
*전주고 졸업
*전주금융조합이사,전북대 사무직 과장 역임
*1978년 시조문학으로 등단
*시조집으로‘새벽녘 까치소리’(1989)
‘해거름에 타는 불꽃’(2002)과 한시집
‘작촌 한시집’, 그리고 향토사를 정리한
‘완산골의 맥박’이 있음.
*전주시민 문화장(81) 전북도민문화장(88)
표현문학상(99) 전북의 어른상(2001) 수상.

글 내용은 한폭 한폭 여러 사람들의 한시를 옮겨 쓰신 것으로 보입니다.

1]春風堂上初來燕 細雨庭前新種花 춘풍당상초래연 세우정전신종화

봄 바람 부니 마루 위에 제비가 처음 날아들고

가는 비 내리니 뜰 앞에 새로 꽃을 심네.

2]麝過春山草自香 龍歸曉洞雲猶濕 사과춘산초자향 룡귀효동운유습

용은 새벽에 동천으로 돌아갔으나 구름은 아직도 젖었고

사향노루는 봄에 산을 지나갔으나 풀들은 절로 향기롭다

3]晨窓林影開 (신창림영개)夜枕山泉響 (야침산천향)

☞새벽이면 창가에 숲 그림자 아른거리고

☞밤이면 베개 밑에 샘물소리 스며오네

隱居復何求 (은거부하구)無言道心長 (무언도심장)

☞숨어 사는 판에 무얼 구하려 하겠는가?

☞말없이 살다보면 도심이 자라겠지

4]山重水複疑無路. 游暗花明又一村(산중수복의무로 유암화명우일촌)

☞산과 물이 겹겹이라 길이 없어 보여도,

☞버드나무 꽃 흐드러지게 피는 곳에 마을이 있더라

※길이 막혀 끝이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 또 하나 마을이 나타난다. 가장 아름다운 매화는 여기저기 깊게 파이고 잘리고 거북등처럼 갈라진 나무 둥치에서 피어난다.

5]道心靜似山藏玉(도심정사산장옥) 書味淸如水養魚(서미청여수양어)

☞도를 딱는 마음은 산이 옥을 품는 것과 같고

☞책을 읽는 마음은 맑기가 물에 고기를 기르는것과 같다.

6]古硯微凹聚墨多(고연미요취묵다) 無愧於人海東軋(무괴어인해동알)
☞옛 벼루 패인 곳에 먹물 고였고,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은 海東을 삐꺽거리게 하네.

▲앞측 왼쪽부터 세번째가 전주이강주 회장 조정형(작촌선생 3子)

▲왼쪽이 전주이강주 회장 조정형(작촌선생 3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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