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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향기를 찾아서210

▣영흥조씨 한산부원군 충무공 조영무 묘비(한양조씨완동본동성이족집단) 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領議政漢山 府院君 贈諡忠武公漢陽趙英茂之墓 ※자기 선조님 묘비를 사기치며 쪽팔린 묘비명!(右議政) 대광보국숭록대부의정부영의정한산 부원군 증시충무공한양조영무지묘 (우의정) ■태종실록 28권, 태종 14년 7월 28일 기해 3번째기사 1414년 명 영락(永樂) 12년 ■한산 부원군 조영무의 졸기 한산 부원군(漢山府院君) 조영무(趙英茂)가 졸(卒)하였다. 임금이 그 집에 거둥하여 문병[視疾]하려고 하여 의장(儀仗)과 시위(侍衛)가 이미 준비되었는데, 숨이 끊어 졌다는 소문을 듣고 중지하였다. 심히 애도(哀悼)하여 소선(素膳)하고 3일 동안 철조(輟朝)하고 쌀·콩 1백 석과 종이 2백 권을 부의(賻儀)하고 시호(諡號)를 충무(忠武)라고 하였다. 조영무가 죽자, 임금이 하윤(河崙)에게 물었다. .. 2018. 6. 8.
현곡공신도비명병서 및 행장(玄谷 趙緯韓 神道碑 & 行狀) 神道碑銘(宋時烈 撰, 宋子大全 卷165), 行狀(朴世采 撰, 南溪集 外集 卷15), 韓國系行譜 등에 의함 宋子大全卷一百六十五 / 碑 玄谷趙公神道碑銘 幷序 玄谷趙公卓詭嵬岸。早歲蒙難蠖屈。遭遇明時。又率意言事。用舍相半焉。論者曰。韓,歐濮議。與諸賢殊異。至被彭公重繳。然不以是後世少韓歐。公諱緯韓。字持世。漢陽人。其遠譜與靜庵先生同。曾祖邦彥。官參判。祖玉縣令。考揚庭不仕。 贈判書。能以禮法治家。妣韓氏。某官某之女。公生數歲。祖母吳夫人愛其誦書朗然曰。此吾耳邊絲竹也。十歲作詩。已有思致。十有六歲。徧讀先秦古文。場屋屢居上游。己丑。丁憂才殯殮。而母夫人疾革。嘗泄痢。又割指進血。甲午。喪母夫人踰禮。辛丑。中司馬試。癸卯。除重林察訪。平遷至主簿,監察。遂登己酉第。先是十餘年間。倭寇猶未平。嘗從金將軍德齡。試軍旅事。天將有愛公者。公欲隨入中朝。博觀天下。朝中先輩知公遺落世事。並與.. 2018. 1. 5.
너브실(廣谷)마을 월봉서원(月峯書院)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 5숭덕사(崇德祠) 4.정안문(靜安門) 3.월봉서원(月峯書院) 빙월당(氷月堂) 충신당(忠信堂) 장판각(藏板閣) 전사각(典祀閣) 2.동재 명성재(明誠齋) 서재 존성재(存省齎) 1.망천문(望川門) 애일당(愛日堂) 칠송정(七松亭) 백우정(白牛亭) 귀후재(歸厚齋) 2017. 10. 17.
贈吏曹參判趙公一軍殉義碑증이조참판조공과일군의순의비 義兵將山西趙公慶男事蹟碑 의병장산서조공경남사적비 의병장 조헌(趙憲)과 중[僧승려] 의장(義將) 영규(靈圭) 금산(錦山)전지비(戰地碑) 충청도 의병장 조헌(趙憲)과 중[僧승려] 의장(義將) 영규(靈圭) 등이 금산(錦山)에서 적을 치다가 패하여 죽다. 그 뒤 만력 23년 을미년(1595, 선조 28)에 전지(戰地)에 비를 세우다. 그 비문은 다음과 같다. 贈吏曹參判趙公一軍殉義碑 嗚呼。此贈參判趙公殉節地。而麾下同死士。葬其體魄之所也。萬曆壬辰。倭難猝起犯我境。我軍所在輒崩潰。無敢嬰其鋒者。倭遂乘勝長驅。直渡漢水。三京俱不守。乘輿西遷。絶無勤王者。公時在沃川村舍。獨投袂而起。沫血移檄。召募義旅。巡察及守土者競沮撓之。公乃與同志門生全承業金節等。馳往湖右則前參奉李光輪及士子申蘭秀,張德盖,高擎宇,盧應晫等。慕公義爭來會。遂募兵與糧。或造戰械。以七月四日.. 2017. 4. 15.
보길도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의 암각시문(岩刻詩文) 보길도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의 암각시문(岩刻詩文) 八十三歲翁(팔십삼세옹)-83세 늙은 이몸이 蒼波萬里中(창파만리중)-거칠고 먼 바닷길을 가노라 一言胡大罪(일언호대죄)-한마디 말이 어째 큰 죄가 되어 三黜亦云窮(삼출역운궁)-3번이나 쫓겨가니 신세가 궁하구나. 北極空瞻日(북극공첨일)-북녘 하늘 해를 바라보며 南溟但信風(남명단신풍)-남쪽바다 믿고 가느니 바람뿐이네! 貂裘舊恩在(초구구은재)-초구에 옛 효종의 은혜 서려 있어 感激泣孤衷(감격읍고충)-감격한 외로운 속마음 눈물 지우네. 2017. 3. 11.
임경업장군 고조부모, 5대조 묘소 보호되어 있는 글 입니다. 2017. 2. 3.
예천군 감천면 돈산리 산골마을 (한양조씨집성촌) 예천군 감천면 돈산리 산골마을 (한양조씨집성촌)천곡서당 팔우헌고택 잠실헌 돈암정 일봉정 명덕사 방산정사 공동제 삼산당고택 동신목(洞神木) 열부유인경주김씨烈女碑閣 전통한옥생활체험관(傳統韓屋生活體驗館)      ◈유산정사幽山精舍◈(도로명)경상북도 예천군 감천면 유동길 96-7(지번명)예천군 감천면 유리 390-6117세 팔우헌공八友軒公(휘 보양普陽)의 별당 2017. 1. 18.
신사임당 묘갈명 전문 申師任堂 墓碣銘 全文 李元秀 申師任堂 경기 파주시 법원읍 동문리 산 5-1 http://blog.naver.com/hahnguibok/20142164201 신사임당묘갈명 1670년(현종 2년)에 경기도 파주시 천현면 동문리 동문리 산 5-1에 건립된 신사임당(申師任堂)의 묘갈이다. 묘갈은 송시열(宋時烈)이 찬하고 송준길(宋浚吉)이 글을 썼다. 그런데 묘갈 끝에 “묘표 가운데 청송처사 성공 수침(聽松處士成公守琛)은 마땅히 여성위 이암 송공 인(礪城尉㶊菴宋公)으로 고쳐야 하며 그 아래 청송(聽松) 두 글자도 마땅히 이암(㶊菴)으로 고쳐야한다. 아마 당초 글을 청한 사람이 잘못 알려 주어서 그렇게 된 것일 것이다. 이제 따로 이일을 기록하면서 이를 정정하는 바이다. 1691년(숙종 17년) 5월 일에 반남(潘南) 박세채(朴世采)가.. 2017. 1. 17.
충북 괴산의 우암 송시열선생묘(청천면소재지) 우암송시열(1607-1689년)선생묘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청천리에는 장군대좌형(將軍臺座形)이라 불리는 우암 송시열(1607-1689년) 선생 묘가 있다. 원래 묘소는 숙종(肅宗) 15년(1689) 왕세자 책봉 문제로 정읍에서 사사된 후 수원 무봉산에 있었으나 8년이 지난 후 숙종 23년(1697)에 이곳으로 이장하였다. 청천은 송시열이 벼슬을 물러난 후 은거했던 화양동계곡과 노론사림(老論士林)의 중심인 화양서원(華陽書院)이 있는 곳이다. 전설에 의하면 이 자리는 장군대좌형인데 주변 산세에 졸병에 해당되는 산들이 없으므로 발복(發福)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후손들은 시설자금 300냥을 기부하고 청천시장을 개설하여 사람들이 몰려들게 하였다. 그러자 마을도 번창하고 송씨 가문 후손들도 번창했다는 이.. 2014. 5. 4.
기대승의 ‘실천선비정신’ 깃든 광주 월봉서원 ♠기대승의 ‘실천선비정신’ 깃든 광주 월봉서원♠ [오마이뉴스 유길수 기자] 요즘 대한민국의 대다수 사람들은 기호지방하면 충청도만을 떠올린다. 서울 포함 수도권은 이미 지방이 아닌 것으로 판단한다. 동시에 기호학파하면 율곡 이이 선생만을 일단 생각해낸다. 그 뒤에 영남지방은 경상남북도, 영남학파의 거두는 퇴계 이황 선생, 그리고 이이와 이황이 우리 민족 사림문화 ‘두 대표’로 ‘교통정리’하기 일쑤이다. 게다가 호남지방하면 전라남북도 지역, ‘남도’하면 전라도 지방으로 지레짐작한 뒤에 곡창지대, 풍류의 고장, 특별한 예술문화지역쯤으로 예단해 버린다. 시간이 허락되면 동학란, 광주학생의거, ‘5월 18일의 광주’ 등은 의로움의 한 상징으로 덤인심 쓰듯 ‘호남해석’을 해버린다. 역사적으로 호남이란 단어가 들어가.. 2006. 2. 9.
仁川上陸作戰55周年記念 http://cafe108.daum.net/_c21_/bbs_read?grpid=uEi0&mgrpid=2475[펌] 정치/안보관련 토론장 | 한미 정치 및 안보 관계 토론장입니다 인천 상륙 작전 사진들..... 번호:2475 글쓴이:전초대장 조회:14 스크랩:0 날짜:2005.09.25 14:41 ;;;;;;;;;仁川 上陸 作戰 仁川 上陸作戰 大勝 55 周年 記念 맥아더 장군의 용단 맥아더원수가 인천상륙 작전을 계획했을 때, 미군 수뇌부는 동경회의('50년 8월 25일)에서 인천은 조수간만의 차와 항공지원의 항속거리 밖에 있다는 이유 등으로 크게 반론을 제기하였다. 이 때 맥아더 원수는 "북한군 지휘관들도 당신들과 같이 훌륭한 장군이다. 여러분이 인천상륙작전을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북한군의 장군들도 .. 2006. 2. 8.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 비문] 해석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 비문] * [ ]안은 주석 및 보충 해석, □안은 미판독자 추정 보완 해석 2022년 하반기 옛한글 문헌 전자화 프로젝트가 12월 24일부터 2월 11일까지 진행됩니다. 惟昔始祖, 鄒牟王之創基也, 出自北夫餘, 天帝之子, 母河伯女郎, 剖卵降出, 生而有聖[德]. 아, 옛날 시조 추모왕이 창업한 터이다. 북부여에서 나시어, 천제(天帝)의 아들이시고 어머니는 하백의 따님이시다. 알을 가르고 세상에 내려오시니 나면서부터 성스런 [덕]을 갖추셨도다. [鄒牟王奉母]命 駕巡幸南下,路由夫餘奄利大水。王臨津言曰 我是皇天之子,母河伯女郎,鄒牟王。為我連葭浮龜! 應聲 即為連葭浮龜 然後造渡. 於沸流谷 忽本西 城山上, 而建都焉. [추모왕은 어머니의 명을 받들어], 수레를 타고 순행(巡.. 2006. 2. 6.
조선 건국 비화 이성계는 여진족인가? 조선 건국 비화 이성계는 여진족인가? 솔직히 현재 전주이씨의 직계라 할수있는 동북출신 이성계가문은 조선건국 당시 몇십명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또 조선초의 총인구가 500~600만 정도 였고 현재 남북한 및 해외동포 의 총 인구가 8000천만.. 자연인구 증가로 20배정도 늘어난데 비해 전주 이씨는 몇십명이던것이 수백만으로 늘어나는 기현상을 나타내죠.. 아무리 왕족이고 부귀영화를 누렸다해도 상상을 초월하는 높은 수준이라는거죠...왕족프리미엄을 더해준대도 불가사의한 숫자죠. 그러니까 현재 전주이씨라는 수백만명중 1~2%정도인 몇만명만 진짜 전주이씨라는 거죠..나머지 98%는 가짜라는 건 초등학생이 봐도 알수있는 거죠.. 한국의 성씨중 대부분이 이런상태죠..이런점을 주지하신 다음에 아래글을 읽어 보세요... .. 2006. 2. 4.
오죽헌의 향기를 찾아서..... 도보 테이블에 첫발을... 나는 강릉을 좋아한다. 누군가 어디로 여행가야 할까를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늘 강릉을 이야기한다. 흔해빠진 강릉..? 혹자는 시큰둥해한다. 하지만 나는 지금껏 강릉을 여섯번이나 갔고, 갈 때마다 좋은 추억을 쌓았으며,내가 추천해서 같이 갔던 친구들은 내가 안내한 코스에 무척이나 즐거워했다. 보통 경포 쪽에서 놀기는 하지만, 강릉이라는 시가지도 많이 정들었다.너무 시골스럽지도 않고, 너무 시끄럽게 굴지도 않고.. 관광이라는 자산을 어떻게 발전시켜야 하는지도 알고 있는 것 같다. 누군가 나에게 서울말고 다른 곳에서 살라고 한다면 난 강릉을 제일 먼저 떠올릴 것이다. 암턴.. 이번엔 여행을 가고 싶어한 이모가 당일치기를 원해서 필수 코스인 소금강이 빠졌지만..여전히 참소리 박물관과.. 2005. 7. 22.
2005.5.5충무공 이순신장군묘역 참배 2005.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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