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척전(崔陟傳)-현곡(玄谷) 조위한(趙緯韓,1567~1649)■
■최척전(崔陟傳)-현곡(玄谷) 조위한(趙緯韓,1567~1649)■ 「최척전」은 「기달록(奇達錄)」이라고도 불리었는데, 현곡(玄谷) 조위한(趙緯韓, 1567~1649)이 광해군 30년인 1621년에 지은 작품이다. 이는 다음과 같은 「최척전」의 후기를 통해 알 수 있다. 내가 남원의 주포에 머물고 있었는데, 때마침 최척이 방문해서 자기가 겪었던 일을 이처림 이야기하고이어서 그 전말을 기록하여 없어지지 않도록 해달라고 부탁하였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경개를 대략기술하였다. 천계 원년 신유년 윤이월 소옹이 짓다. 余流寓南原之周浦, 陟時來訪余, 道其事如此, 請乃記其顚末, 無使湮沒. 不獲已略擧其槪. 天啓元年, 辛酉潤二月日, 素翁題. 「최척전」, 『필사본 고전소설전집』 3, 아세아문화사, 198쪽. 위의 기록은..
2023. 10. 24.
■한성판윤, 대제학, 동지사 정사, 예조판서, 전라관찰사, 사헌부대사헌 등을 역임했던 조성교(趙性敎.1818∼1876) 선생의 壬申年 간찰!!!
■한성판윤, 대제학, 동지사 정사, 예조판서, 전라관찰사, 사헌부대사헌 등을 역임했던 조성교(趙性敎.1818∼1876) 선생의 壬申年 간찰!!! ■한성판윤, 대제학, 동지사 정사, 예조판서, 전라관찰사, 사헌부대사헌 등을 역임했던 조성교(趙性敎.1818∼1876) 선생의 壬申年 간찰 ●조선 후기 문신.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성유 (聖惟). 형관(亨觀)의 아들로 형만(亨晩)에게 입양되었다. 1859년(철종10) 증광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 1866년(고종3) 성균관대사성·이조참의 등을 역임하였고 이듬해 동지부사로서 청나라에 다녀왔다. 1870년 예문관제학·홍문관제학·한성부판윤 등을 거쳐 이듬해 예조판서에 올랐다. 이 해 동지사의 정사로 재차 청나라에 다녀왔으며, 의정부좌참찬·대제학을 지내고 1873..
2023. 10. 15.